중편소설 당선작 <줄거리>최윤혜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어느 날 나는 성형외과에서 코 시술을 받은 후로부터 신체의 균형 감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술 후 나 자신에 대한 만족스러운 감각을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애초의 짐작과 달리, 나는 사람에 대한 긍정적 감각을 상실했을뿐더러, 타인의 향기, 나와 타인과의 사이에서 평화로운 공존을 지탱해 주는 거리 감각을 상실하고 만다. 나는 불필요할 정도로 예민하게 활성화되어 있는 감각 속에서, 무의식의 달콤한 활동조차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부자유한 상태에 놓였으며, 만화책을 보아도 웃지 않는 무감각한 상태의 나 자신을 발견한다.
애프터서비스 콜을 하기 위해 병원에 연락했지만 도도하고 기품 있고 친절한 매니저는 리터치 기간이 지났다고 말했으며, 의사는 내 증상은 심인성일 뿐, 병원에서는 백 프로 정품을 사용하므로 부작용이란 없다고 잘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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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가 가라앉은 2주 후에 병원을 찾아오면,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수정해 준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 나는 마치 수정액을 가볍게 흔들어 종이에 쓴 글자에 살짝 묻히고 입김으로 후 불어 그 위에 새 글자를 다시 적는 것과 별다르지 않다는 듯, 무심하고도 친절한, 거만하고도 겸손한, 야릇하게 복종적이면서도 지배적이게 우월한, 바로 그 태도에 무한한 신뢰와 기대감을 보내며, 이제 나 자신의 달라진 모습에 대한 자부심을 만끽하는 기쁨의 주인공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시술 후의 부작용으로 내가 전화를 걸자, 그는 내가 자신의 완벽한 실력에 의문을 제기한다고 여기고서 나를 대하던 친절하고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를 거두어 갔을뿐더러, 자발적으로 내게 부여해 주었던 고결하고 우월한 고객님의 지위를 훌쩍 걷어내고서, 정신에 문제가 있는 멍청한 환자로 취급하며 말문을 막아 버렸다. 비로소 나는 심미적 인간과 외모집착형 인간,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과 인색한 사람, 자기절제력이 있는 사람과 독한 사람, 개성적인 사람과 고집 센 사람, 순수한 사람과 성장이 덜 된 숙맥, 정직한 사람과 독설가, 오타쿠와 취향의 인간, 애호가와 중독자, 천재와 바보가 종이 한 장 차이로 평가의 질을 달리하는 구조에 놓여 있으며, 누구나 언제라도 위험하지만 피할 수 없는, 변덕스럽고도 균형이 흔들리는 불안한 사회적 관계에 놓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동시에 나는 의사와 매니저의 말투에 자신도 모르게 동의하는 대화를 이어 오면서, 나 자신이 그들의 오류나 잘못에 대해서도 온전한 나 자신의 책임으로 수긍하는 화법을 완성해 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부작용을 호소하는 내게 의사와 매니저가 혹시 냄새를 맡지 못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나는 마치 동물병원에 찾아와 수의사와 교신하는 개나 고양이가 된 것처럼 수치스럽고 난처함을 느낀다.
도서관에서 타인과의 직접적인 부딪힘 없이 혼자서 복사 업무에 집중하던 나는 타인의 음침하고 어두운, 고통에 가까운 부정성의 마음을 읽어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평소에 사람들과 평화롭고 무심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이, 긍정성과 부정성의 감각이 섞여 있어 일종의 균형 상태를 경험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감정의 신호를 보내며 자기를 표현하고 또 감추기 위해 애쓰고 있는 내 삶의 환경적 인자라는 것을, 나는 타인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거리 감각을 상실하고 난 뒤에, 감정의 재난 상태에 빠진 채로 헤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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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까이 있는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씁쓸하고도 시큼한 마음의 고통을 느끼며 심장이 부푸는 것같이 숨이 차는 경험을 하게 되지만, 상대에게 위로를 건네거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그럴 경우 내 입장이 곤란해질 것이며, 상대방도 곤혹스러워지리라는 것을 분명히 감지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엄습한 감정의 회오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이성의 촉수를 바짝 곤두세워야 했으며, 그것은 마치 하루 종일 틀어 놓은 에어컨 팬처럼 뜨거운 열을 내뿜으며 폭발 직전의 팽창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마치 사람의 몸에 좀비의 심장을 가진 것처럼, 주파수가 다른 음계를 듣는 박쥐가 된 것처럼 난처했으며, 사람들이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음험하고 어두운 마음에 접속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감각의 피로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마음의 진공 상태에 나 자신을 위치시키려고 애를 써 보았다. 어느 날 도서관의 정규직 사원인 J가 나에게 밥을 먹자고 말을 건네기 전까지는 나는 최소한 그런 상태로 나 자신을 삶에 적응시키려고 했다.
처음에 나는 J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건 내가 시술을 마치고 도서관으로 복귀했을 때, 적어도 J만큼은 나의 달라진 외모에 대해 알은척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이었고, J가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적이 서운했기 때문이었다. 4년제 대학을 나오고 9급 공무원 시험에도 당당히 합격한 J는 정수기 옆 복사기 앞에 서서 일하는 나와는 달리, 비록 구형이기는 해도 자기만의 컴퓨터를 칸막이가 놓인 책상 위에 두고 앉아서 일하는 정규직 사원으로, 나와 나이가 같아서 가끔 말을 섞으며 대화를 나누던 유일한 동료였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 돌아온 뒤에도 J는 다른 사원과 마찬가지로 내게 찾아온 안팎의 변화에 대해 알아차리지 못했을뿐더러, 나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런 J가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나를 카페까지 따라와 맞은편 의자에 앉을 때, 나는 그가 마치 생선 가시를 삼킨 것처럼 말하고 싶은 무언가를 목구멍 안쪽에 숨기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J와 대화하는 동안에 내가 더이상 코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으며, 이후에는 다시 맛볼 수 없게 부정성이 제거된, 감각의 평온점에 따뜻하게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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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가 불 꺼진 도서관에서 플래시를 이리저리 비추며 계단을 내려갈 때에, 나는 일렁이는 불빛이 어쩐지 움직이는 바닷속에서 전기장어가 마지막 유언 삼아 혼자서 해보는 불쇼같이 예쁘고 로맨틱하다는, 망측하고도 외람된 생각을 하면서 세 걸음쯤 뒤에서 양손에 요령을 든 시동처럼 그의 뒤를 말없이 따라갔다. 손에 쥔 요령이 너무나 예뻐서 그게 장례식을 장식하는 죽음의 전령이라는 것도 모르고 음악 같은 소리에 취해 관을 뒤따라가는 시동과 같다고 나는 생각하면서, J가 듣지 않도록 속으로 욕을 해 보았는데, 그건 정규직이면서 불평을 늘어놓는 J를 향해서인지, 아니면 거금을 투자해 코 시술을 하고 나서 예기치 못한 재난에 빠진 나 자신에 대해서인지, 그도 아니면 먹지처럼 소리 없이 전쟁을 해서 도대체 어디가 문제라고 말할 수도 없는 세상을 향해서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어쩐지 J의 태도와 느낌이 이상하다 싶어서 밤에 숙직실을 빠져나와 집까지 걸어서 돌아간다.
검은 밤에 주차장 길 쓰레기통 근처에서 마주친 고양이는 늠름하고 귀태 넘치는 자세로, 인간으로서는 이처럼 누추한 곳에서 이토록 우아한 걸음걸이는 나올 수가 없지라고 말을 건네듯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으며, 어쩐지 나는 고양이라는 대상이 품고 있는 실존의 냄새를 맡아 버린 것 같다. 그것이 내내 익숙하게 나를 괴롭히던 부정성의 감각과는 거리가 좀 먼 것이라는 것을 내가 깨닫게 된 것은 다음 날 아침 출근을 하고 난 뒤에도 한참 후에, J가 사라졌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뒤였다.
다음 날 도서관에 갔을 때 J는 출근하지 않았고, J의 결근이 지속된다. 주임은 계약직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해 중얼거리듯 탓했으며, 복사를 하던 나는 비록 그 위치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생수통 옆이기는 했지만, 마치 내가 듣는 귀가 없는 생수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무심하게 일용직의 근무 태도를 탓하는 직원들의 대화를 듣고 수치심을 느낀다. 그게 내 열등감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마치 불필요한 욕을 먹은 것처럼 어쩐지 부당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나는 J가 나와 같은 주급 계약직이었다는 사실에 놀란다. 아무도 J에게 이유를 묻는 전화를 하지 않았으며, J는 마치 스팸문자처럼, 이 공간으로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진다. 그리고 J가 맡고 있던 당직 업무는 나에게로 이월된다.
나는 내가 J의 업무를 대신 맡음으로써 J의 실종을 완성해 내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힌다. 거의 매일 당직을 맡으면서 나는 그간 J가 그랬던 것처럼, 낮과 밤을 모두 회사에 바치고, 나 자신과 사생활로부터 배제당한 채, 실종된 삶을 연명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숙직을 서던 날 밤, 나는 J에게 말을 건네며, 어쩌면 누군가 나에게 건네는 말을 들은 것처럼 기묘한 울림을 느낀다.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다, 투명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로서, 존재 증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중얼거린다. 너에게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무튼 잘 모르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삼십 프로 디시를 해 주는 성형외과를 소개해 줄 걸, 현금으로 내면 십 프로는 더 할인해 주는데, 나는 J에게 처음으로 너라는 표현을 건네 본다. 그리고 그게 내가 J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을까에 대해 나는 더이상 생각의 꼬리를 이어 가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나는 마치 나의 이름을 부르는 메아리처럼 나지막하게 그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J.
칼날처럼 우뚝 솟은 내 콧날 위로 차가운 종이 바람이 스쳐 지난다.
● 당선소감
가장 깊은 언어를 찾기까지 스스로 단련할 것
최윤혜 씨
소설을 쓴다는 것은 이유를 알 수 없이 무언가에 열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이며, 새로운 감각으로 세상의 정면을 직시하는 일이다. 일상적 삶의 경계를 흔드는 경험 속에서도 자신의 가장 예쁘고 좋은 것을 찾아 그것이 잘 자랄 수 있게 최선의 정성을 다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글 쓰는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으며, 심지어 격려하는 세상의 모든 에너지와 실체들, 내가 알거나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과 마음들에 감사드린다. 내가 작가가 된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와 마음속에 살아있는 나의 아버지께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의 어리둥절하고도 기쁜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인생이 힘들었을 때 문득 칸트의 심미적 개념이 떠올랐다. 아무 이해관계가 없지만 시간을 저절로 바치면서도 즐거워지는 것, 목적 없이 만나도 마음이 행복한 사람들을 위해 내 인생의 소중한 시간과 마음을 쓰는 것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 길 아닐까. 글쓰기가 흘러가는 시간 위에 적은 작은 낙서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기억이 될 수 있게, 내가 아는 가장 깊은 언어를 찾을 수 있도록 나 자신을 단련하겠다.
이 수상을 나는 그 길을 걸어가도 괜찮다는 세상의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 길을 열어준 동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마음으로부터의 감사를 전한다.
△1968년 서울 출생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 졸업(박사)
● 심사평
장황한 수다 뒤에 비감한 극적 여운 돋보여
구효서 씨(왼쪽)와 조남현 씨
김의경의 ‘물건들’은 ‘다이소’라는 공간을 문제적 공간으로 보기보다는 들여다보기에 흥미로운 공간으로 처리해 버린 느낌이다. 흥미가 흥미답기 위해서는, 일테면, 다이소 공간과 가난한 청춘의 동거공간이 소비사회에서 인간 및 인간관계가 겪는 물화의 과정 따위를 비춰내야 했을 것이다.
옥림씨라는 인물의 고생스러운 일대기와 그 피붙이들의 형편을 다룬 김혜자의 ‘정류장’은 어떤가. 고유어를 쓰고 읽는 맛을 빼면 무엇이 남을까. 삶의 세부와 그것을 설명하거나 묘사하는 어법까지도 퍽 고유어적인데 그 운용이 놀랍도록 세련되고 자연스럽다. 다만, 그뿐이다. ‘기다리지 마세요, 어머니’라는 부제와 그에 맞닿는 결미로 소설의 효용을 가까스로 높이려 했으나 역부족인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활발하고 고요한 코의 자세’의 입심은 수다스럽고 장황하고 능청스럽다. 밑도 끝도 없이 왜 이러나 싶을 즈음 J가 등장하며 시나브로 조용하고 진지해진다. 그 J가 사라지고 도서관에 ‘나’ 홀로 남았을 때는 비감하다. 비로소 작가의 수다와 장황이 전략이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한다(짐작이 아닌 확신이었으면 좋겠다). 앞의 두 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지나칠 만큼 작품의 효용성과 그에 대한 자기 정리가 두드러진다. 솜씨로 보아 쉽게 극복될 것이라 보고 당선작으로 밀었다.
조남현 문학평론가·구효서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