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THANK YOU, MOM]<4·끝>김해진 키운 유공심씨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피겨 여왕’ 김연아와 함께 출전하는 김해진(위쪽 사진 왼쪽)이 어머니 유공심 씨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하루 24시간 김해진의 곁을 지키면서 운전사, 매니저, 물리치료사 등 1인 다역을 해낸 유 씨의 희생이 있었기에 김해진은 주니어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포스트 김연아’로 성장할 수 있었다. 아래쪽 사진은 김해진의 초등학교 4학년 때 모습. P&G 제공
유공심 씨(43)는 고민 끝에 결국 말했다.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2010년 9월 큰딸 김해진(16·과천고)은 훈련 도중 다른 선수와 부딪히면서 다리 인대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김해진은 수술대에 올랐고 4개월 넘게 재활에 매달려야만 했다.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을 보며 유 씨의 마음은 찢어지는 듯했다. 유 씨는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2004년부터 해왔던 피겨를 그만두자고 말했다. 유 씨의 말을 듣던 김해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 나 다시 할래. 피겨 하고 싶어.”
김해진은 주니어 시절부터 ‘피겨 여왕’ 김연아(23)의 뒤를 이을 ‘차세대 김연아’로 불려왔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남녀종합선수권 3연패를 차지했다. 종합선수권 3연패는 김연아가 2002년부터 4연패를 달성한 이후 처음이다. 김해진은 국제대회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적을 냈다. 2011년 루마니아 주니어 그랑프리 4차 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면서 2008년 이후 끊겼던 국제대회 메달도 3년 만에 따냈다. 지난 시즌 슬로베니아 주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에서는 우승까지 차지하며 김연아 이후 가장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유 씨는 10년 전 취미로 시작한 피겨를 딸이 지금까지 할 줄은 몰랐다. 나이가 어리니 피겨에 흥미를 잃으면 공부를 시키겠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김해진은 점점 피겨에 빠져들었고 실력은 늘어만 갔다. 유 씨는 “해진이가 피겨를 해야 하는 운명인가 보다 생각했다. 중학생 때까지는 공부를 시킬까 고민도 했지만 딸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피겨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오전 6시에 일어나 가족들의 아침 식사를 챙긴 뒤 딸을 차에 태우고 훈련장과 병원 등을 오가야만 했다. 밤 12시가 넘어서야 집에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1년에 약 4만 km를 이동하는 강행군 속에 자동차가 폐차 직전의 상태가 되고는 했다. 10년간 자동차를 세 번 바꾸었다. 유 씨의 개인 시간이 없는 것도 힘들었고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도 눈치가 보였다.
“해진이는 체중 조절이 필요해서 조금만 먹어요. 딸 앞에서 제가 먹고 싶은 것을 먹거나 많이 먹을 수는 없었어요. 많이 먹고 쑥쑥 크는 시기인데 엄마가 먹는 것을 보면 자신도 얼마나 먹고 싶겠어요. 그냥 저도 해진이와 똑같이 먹었어요. 물론 지금도 쉽지는 않죠.”
‘피겨 그만두자’는 말이 목젖 아래까지 나올 때가 많았다. 그래도 유 씨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딸의 꿈을 이뤄주자’는 목표 덕분이었다. “해진이는 피겨를 정말 좋아해요. 아무리 힘들어도 싫은 내색 않고 훈련해요. 해진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제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희생이라고는 생각 안 해요.”
○ “딸의 올림픽 첫 출전 설레요”
김해진은 내년 소치 겨울올림픽에 김연아, 박소연(16·신목고)과 함께 피겨 여자 싱글에 출전한다. 올림픽 출전은 김해진이 피겨를 시작할 때부터 이루고 싶었던 꿈이다. 유 씨도 딸이 꿈에 다가섰다는 현실에 요즘 행복하기만 하다.
“지난달 해진이의 올림픽 출전이 확정되었을 때 너무나 기뻐했어요. 그동안 울고 싶고 주저앉고 싶었던 힘든 시간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해진이가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마음속에 쌓였던 고생이 사라지는 기분이에요.”
김해진에게 소치 올림픽은 끝이 아닌 시작일 뿐이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해 메달을 거는 것이 최종 목표다. 유 씨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은 딸이 대견스럽다.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