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순 가톨릭 언론인협의회 고문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
필자는 여러 정치 현안에 대한 정평위 담화문의 논리적 타당성 여부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신자들이 교회에서 영혼의 구원을 받기는커녕, 마음의 상처를 안고 교회를 떠나는 주요 원인이 교회가 사회의 논쟁적 사안에 대해 직접 개입함으로써 교회와 사회 간의 갈등과 교회 안의 분열을 유발시키고 있기 때문임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기독교는 지난 2000년 동안 수차례에 걸친 십자군전쟁에서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켰고,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고, 수많은 식민지 전쟁에서 원주민의 대량학살에 참여하는 등 종교를 앞세워 정의라는 이름으로 많은 오류를 범한 적도 있다. 이슬람교는 현재도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지하드라는 이름으로 피를 흘리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로마 가톨릭은 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친 교회 쇄신운동으로 과거의 권위주의적이고 배타적인 모습에서 겸허한 자세로 변모했다. 더욱이 “교회 밖에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놀라운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요한 바오로 2세 때는 교회가 행한 오류에 대하여 용감하게 성찰하는 모습을 보이며 교회의 쇄신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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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끊임없이 추구해 왔지만 그것은 쉽게 이루기 어려운 이데아의 세계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정의’라는 개념은 시대와 입장에 따라 다른 얼굴을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정의라는 이름의 폭력이 가장 무섭고 ‘의’라는 글 속에서 피비린내가 난다고 하지 않는가.
예수님은 여러 가지 비유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랑의 권면과 훈계의 채찍으로 수많은 진리와 교훈을 가르치면서도, 유대 왕 헤롯과 로마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적은 없었다. 예수의 말을 빌미로 당신을 붙잡으러 온 앞잡이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에 대해서 물었을 때도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하시면서 직선적인 비판을 하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 통계를 보면 가톨릭 신자의 78%가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서 신자가 되었다고 한다. 필자도 그러한 평신도의 한 사람으로서 신부님들에게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교회를 정치적 비판과 논쟁의 장이 아니라 오로지 사랑과 평화를 위한 ‘기도의 집’으로 되돌려 주었으면 한다.
강동순 가톨릭 언론인협의회 고문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