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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음악은 우주 만물의 공용어일 거야

입력 | 2013-12-16 03:00:00

2013년 12월 15일 일요일 맑음. 우주인.
#87 Radiohead'Subterranean Homesick Alien' (1997년)




라디오헤드의 앨범 ‘오케이 컴퓨터’에는 안드로이드와 외계인 얘기로 가득하다. 동아일보DB

대학 시절의 형은 우리 집 ‘혁명의 아이콘’이었다. 내 롤 모델이 고집하는 장발부터 난 맘에 들었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그는 꿋꿋이 꽁지머리를 길렀고, 끝내 핍박을 못 견디고 머리를 잘랐지만, 난 어느 날 형의 열린 가방에서 우연히 삐져나온 긴 가발까지 발견했다.

밴드에서 기타를 치던 형은 어느 날 장발의 비밀을 알려줬다. ‘그러게, 왜 레코드판에 있는 멋진 형들은 다 긴 머리를 휘날릴까. 같은 미용실에 다니나?’ 형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로커들은 우주인과 소통하기 때문이다. 우주인들은 남녀 성별 구분이 없거든. 그래, 로커들은 우주인을 지향해서 머리를 기르는 거야.” 어렸던 난 이 말을 살짝 믿었다.

13일 밤, 서울 역삼동에서 ‘우주인을 위한 배경음악 60’이라는 공연을 봤다. 괴상했다. 입장 전에 관객에게 머리에 다는 전등을 나눠줬다. 동굴 탐사할 때 쓰는 거 말이다. 입장하자 깜깜했다.

첫 주자는 인디 음악인 한받(‘야마가타 트윅스터’ 멤버). 각양각색의 무늬로 된 요란한 상하의를 입고 머리엔 커다란 멕시코풍 모자를 쓴 채 등장한 그는 5분 동안 쿵쿵대는 전자음악에 맞춰 외침인지 노래인지 모를 것을 마이크에 쏟아냈다. 관객이 머리에 쓴 전등은 희미한 불빛으로 그를 비췄다. 그는 잠시 후 음악마저 끄고 765(경남 밀양 송전탑의 전압 수)초 동안 침묵 속에 무대와 객석을 돌며 막춤만 춰댔다.

둘째 무대는 실험음악가 권병준 몫이었다. 그가 객석을 향해 놓인 화장대에 앉아 얼굴에 분칠을 하며 이따금 마이크에 ‘후욱!’ ‘슈윅!’ 하는 숨을 불어넣자 그 소리가 즉석에서 외계인 목소리처럼 변형돼 기묘하게 장내를 남실댔다. 마침내 분으로 완전히 덮인 그의 얼굴에 시시각각 변하는 영상이 투사되자 그는 반사체를 안면에 단 외계인 같았다. 변형된 숨소리는 겹치고 반복되며 리듬을 만들었다.

마지막 순서는 1990년대에 선구적인 소리 풍경을 만들어냈던 밴드 옐로우키친의 공연이었다. 몽환적이었지만 그나마 이게 가장 지구다웠다. 난해하고 황당하며 퍽 재미있지 않았지만 문득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내가 하늘 위에 예쁜 수수께끼의 심연을 이고 산다는 사실.

‘친구들에게 전부 말할 거지만/믿지 않겠지/내가 드디어 완전히 돌았다고 하면서/난 그들에게 별이랑 삶의 의미를 보여줄 거야/그들은 날 격리하겠지만/난 괜찮을 거야.’ (라디오헤드 ‘서브터레이니언 홈식 에일리언’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