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얼간이즘’ 표방 에세이집 ‘펄프 극장’ 펴낸 김경주 시인
에세이집 ‘펄프 극장’을 펴낸 김경주 시인. 그는 “19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니고 1990년대를 대학에서 보낸 세대의 감성이 빚진 사물을 소재로 한 문학적 고백, 그리고 자유로운 창작을 꿈꿨던 미국 비트 세대에 대한 오마주(존경)를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시인이자 극작가, 인터넷라디오 연출가 등 이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인 김경주 작가의 신작 에세이 ‘펄프 극장’(글항아리)은 ‘본격 얼간이즘 팩션’을 표방한다. 야광시계와 타자기, 트랜지스터라디오, 채변봉투, 불량식품, 밍크이불, 비키니 옷장에 이르기까지 1970∼90년대를 풍미한 사물 50개를 소재로 한 자전적 고백을 담았다. 자전적 얘기라고 하지만 진지함이나 엄숙함보다 천진난만과 장난기가 잔뜩 느껴지는 글이다. 그런데 왜 하필 얼간이즘일까.
“‘펄프’는 종이를 만드는 원료라는 뜻도 있지만 하수관이나 그 속에 흐르는 찌꺼기를 일컫는 말이기도 해요. 반짝거리고 예쁜 이야기가 아니라도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제 문학적 고백을 담았지요. 그래서 저는 이 글을 블랙 에세이라고 부릅니다. ‘극장’이라는 제목은 50개의 사물에 대한 에피소드가 각기 하나의 단막극, 르포처럼 읽히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였어요.”
하지만 시와 소설, 희곡 형식의 인물 간 대화가 수시로 교차되는 이 책에는 ‘나’가 주어로 등장하지 않는다. 각 장의 주인공은 작가 구스타프 파크, 스톡 앙리,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언 같은 이른바 ‘비트 세대’(1950, 60년대를 풍미했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지지한 예술가 집단)에 속한 아티스트 50명이다.
“우리가 ‘아! 그 사람’ 하고 알 만한 유명 작가는 등장하지 않아요. ‘나’를 앞세우기에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날것의 고백을 담아야 했기에 이들을 각 장의 주인공으로 내세웠지요. 앨런 긴즈버그나 게리 스나이더, 잭 케루악 같은 비트 세대 작가들을 흠모해 왔던 제가 이들에게 바치는 오마주(경의)의 의미도 그런 형식 속에 담으려 했어요.”
그가 요즘 이들 비트 세대 작가들을 총망라한 외국 도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연말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새롭게 번역한 책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기존의 한글판이 너무 어린이 독자들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놓친 내용이 많다는 아쉬움에서 손수 번역할 생각을 했다고 한다.
에세이 집필에 번역, 인터넷라디오 연출까지 5년 넘게 새 시집을 못 내는 이유도 시인의 ‘외도’가 길어졌기 때문이 아니냐고 물었다. “저는 제 작업이 시의 외연을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믿어요. 사람들이 시를 안 읽는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에세이든 연극이든 여러 장르에 시적인 질감을 확산시키는 작업을 시인들이 해야 사람들도 그 속에서 시적인 무엇을 발견하고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우정렬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