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사회부장
귀국길 인천공항의 모습은 180도 달랐다. 여러 부스에서 입국심사가 진행됐다. 한국국적자는 입국 수속에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친절도, 공항시설, 서비스 등에서 워싱턴과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났다.
20여 년 전 선진국 공항을 이용할 때 우리 공항과의 퀄리티 차이에 한숨을 쉬었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공항뿐만 아니다. 워싱턴 인근 대형 가전제품 매장에서 한국 제품들은 최고급, 최고가로 대우받고 있었다. 한국이 여러 부문에서 선진국을 앞설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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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언행을 놓고 여야, 보수 진보진영이 찬반으로 들끓는 것도 옛 화면 그대로다. 실정을 모르는 외국 언론이 ‘한국 정부와 가톨릭이 험악한 관계’라고 보도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정말로 복고의 완결판, ‘응답하라 1980년대’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사회는 몇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시대착각형’ 인사들의 머릿속만 변하지 않았을 뿐이다. 과거 성직자 지식인들은 일반인은 감내하기 힘들 불이익을 무릅쓰고 직업적 양심과 소명감으로 행동했으며 그 내용은 국민의 마음속에 있는 양심의 불꽃을 지펴 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요즘 일부 인사의 발언은 장삼이사라도 술집이나 거리에서 내뱉을 수 있는 수준이다. 용기가 필요하거나 통찰력이 담긴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성직자 교수 원로 등의 지위를 ‘확성기’ 삼아 자신의 이념·주관적 의견을 확산시키려 할 뿐이다.
워싱턴의 지한파 인사는 한국의 이념갈등을 우려하면서 ‘Put yourself in his shoes’라는 표현을 상기시켰다. 직역하면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라’, 즉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역지사지(易地思之)와 비슷한 표현이다. 사회부 에디터로 이념, 지역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대할 때 필자는 ‘시대 바꿔보기’를 해보곤 한다. ‘이 사건이 다른 정권에서 발생했으면 나는 어떻게 대했을까’라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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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 속 시대 이동’은 현 청와대와 여권에도 반드시 필요하다. 2003년 한나라당은 “몇몇 직원의 개인적 댓글”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고 말았을까. 박근혜 의원은 “나는 국정원에 빚진 게 없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공감하며 대통령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선을 그어줬을까.
이기홍 사회부장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