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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신성일은 신성일이다

입력 | 2013-11-21 03:00:00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의 한 장면.

※이 글에는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에 관한 스포일러(핵심적 내용을 미리 밝히는 것)가 있습니다.

“경아, 오랜만에 누워보는군.”

아, 한국영화사상 이렇게 느끼해 토할 것 같은 대사가 또 있던가? 이장호 감독의 1974년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 신성일이 던진 이 대사는 같은 영화 속 여배우 안인숙의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와 더불어 닭살 제대로 돋는 명대사로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의 알랭 들롱’ 신성일. 그가 20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 ‘야관문: 욕망의 꽃’(7일 개봉)을 최근 보았다. 토요일 아침 8시에 파란색 아디다스 삼선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차림으로 가 보았는데, 180석짜리 극장에는 나처럼 혼자 온 아저씨 4명과 뭣도 모르고 온 듯한 20대로 보이는 젊은 연인 두 쌍 등 딱 8명이 띄엄띄엄 앉았다. 이들 8명은 ‘저 사람은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남들 다 자는 이른 시각에 이런 영화를 보러 온 거지?’ 하는 의심의 눈빛으로 서로를 머쓱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올해로 76세인 신성일 때문이 아니라, 신성일의 상대역으로 나온 가수 출신 여배우 배슬기 때문이었다. 인터넷을 보니 배슬기가 이 영화로 인터뷰한 기사의 제목이 ‘파격노출, 악플로 저 상처 받았어요’였는데, 이 제목을 보니 영화를 보지 아니할 재간이 없었다. 파격노출에다 상처까지 받았다지 않는가 말이다.

헉, 일단 제목부터 흥분되었다. 야관문. 뭔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야한 문’이 아닐까. 게다가 부제는 ‘욕망의 꽃’이 아닌가 말이다. 불끈 달아오른 나는 27세 여배우가 거의 50세 연상의 할아버지뻘 배우와 과연 어떤 파격적인 정사를 보여줄 것인가에 온통 기대가 쏠린 채 영화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실망도 이런 실망이 없었다. 두 배우의 정사가 하나도 안 나왔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에로무비’가 아니라 기승전결의 완결된 스토리에다 반전까지 갖춘 한 여인의 복수극이었던 것이다. 술집여자(배슬기)가 순진한 청년을 죽도록 사랑해 결혼하려 하였는데, 청년의 아버지인 교장선생님(신성일)의 무지막지한 반대에 부딪힌다는 매우 전형적인 이야기.

그러나 이야기는 끝으로 갈수록 의의로 삼삼해진다. 청년이 고통 끝에 죽자 사랑하는 남자의 복수를 위해 여자가 떨치고 일어선다. 암 말기 선고를 받고 죽을 날만 기다리는 교장선생님의 간병인으로 위장해 접근하는 것. 여자는 ‘야관문’이라는, 정력에 무지하게 좋은 풀을 매일 다려 ‘암 치료에 좋아요’ 하면서 교장선생님에게 연신 먹인다. 뭣도 모르고 받아먹은 교장선생님은 죽는 순간까지 끓어오르는 육욕에 고통스러워하며 여자에게 ‘제발 섹스해달라’고 통사정하고, 여자는 이를 매몰차게 거절함으로써 복수를 완성한다는 매우 창의적인 스토리였던 것이다.

사실 스토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나 같은 욕구불만 아저씨 입장에선 영화가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자신의 뒤를 캐는 잡지사 기자와 제법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살짝 야한 샤워장면도 보여주지만, 더욱 저질스럽고 노골적이며 21세기적 상상력이 넘치는 장면을 고대한 나로서는 기대치의 반의 반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풀이 죽어 극장을 나서던 나는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신성일, 멋지긴 멋지구나.’

사실, 이건 신성일도 모르는 얘기지만,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2006년 봄, 나는 당시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그를 면회 간 적이 있다. 16대 국회의원 시절 잘못된 돈을 받은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당시 1년 넘게 복역 중이던 그가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신성일과 일면식도 없던 나는 영화 ‘초우’(1966년)로 유명한 한국 영화계의 원로 정진우 감독이 마침 신성일을 면회 간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따라 나섰다. 면회실에서 만난 신성일은 “이 청년은 누구냐”고 내게 물었고, 나는 “영화 스태프인데 선생님을 뵙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세상을 다 가졌던 최고의 스타가 지금은 아쉽게도 이런 곳에 계시네요. 심정이 어떠세요?” 하고 다소 싸가지 없게 물었다. 그러자 신성일이 대답했다.

※신성일에 얽힌 이야기가 ‘무비홀릭’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아, 지독하게 궁금해. 커밍 순!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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