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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6억5000만 원짜리 스피커, “억” 소리 절로

입력 | 2013-11-04 03:00:00

2013년 11월 3일 일요일 맑음. 억 소리 언플러그드.
#81 Eric Clapton ‘Tears in Heaven’(1992년)




아주 비싼 오디오 시스템인 ‘아폴로그 애니버서리 리미티드 에디션’ 사이에서 설명하는 미셸 르베르숑 골드문트 회장. 오디오갤러리 제공

지난주, 지구에서 제일 비싸다는 스피커로 음악을 들어봤다.

스위스의 명품 오디오 제조사 골드문트에서 25대만 한정 출시한 6억5000만 원짜리 오디오 시스템 ‘아폴로그’. 서울 청담동의 오디오 갤러리 쇼룸에서 들어본 그 억대 스피커에서 ‘억’ 소리 났다.

스위스에서 날아온 골드문트의 미셸 르베르숑 회장이 청음 시작 전에 10분간 뜸을 들였다. 백발의 노신사는 참석자 10여 명에게 최면 같은 걸 걸었다. 다음과 같이 요약되는. “이건 정말 사건이라고. 엄청난 오디오를 만들었어. 이제 음악을 틀 건데 말야. 차이를 못 느낄 리 없겠지.” 르베르숑 회장의 말을 듣다보니 벌거벗은 임금님이 걸어 나와도 열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쥐죽은 듯 조용한 실내를 처음 울린 건 노르웨이 여성 보컬 마리 보이네의 목소리였는데 엄청난 무언가는 아직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째, 오케스트라 곡에서야 임금 같은 소리가 느껴졌다. 에런 코플런드의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의 “우자장창/쿠르릉!!” 하는 첫 음에 빙산 옆 펭귄처럼 깜짝! 스위스 전자음악 밴드 옐로의 ‘오 예’(1985년)에서는 여러 개의 피스톤 운동처럼 다가서고 멀어지는 전자음들의 아우성이 시각적으로 실내를 감싸는 듯했다.

근데, 노트. 이 6억5000만 원짜리 스피커를 맘껏 들으려면 65억 원짜리 집이 필요한 건 아닐까. 한편으론 르베르숑 회장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음역 사이의 타임 디스토션(시간 왜곡)을 완벽히 자동 보정하는 최초의 오디옵니다. 사람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처럼 이 스피커로 오래 들어도 귀가 피로하지 않죠.”

그래? 그렇담…, 최고의 스피커는 사람이잖아. 세계에 71억 대의 최고급 오디오가 있는 건가. 자, 모두들 목소리를 가다듬고 기타를 둘러메자고. 피아노 의자를 당겨 앉거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억 소리 나는 소리를 들려줄 때다.

음질 보정을 거쳐 최근 재발매된 에릭 클랩턴의 ‘언플러그드’(1992년) 앨범에 담긴 ‘티어스 인 헤븐’은 클랩턴이 실족사한 아들에게 바치는 추모곡이지만 기타 초보자의 단골 세레나데이기도 하다. 손가락 움직임은 쉽지만 깔끔하게 치기는 어려운. 도입부의 16분 음표 연결부 ‘미-파#-라’와 장식음 ‘도#-레-도#’를 풀잎에 아침이슬처럼 튕겨내면서, 자, 소중한 사람을 향해. ‘우 주 노 마이 네임(Would you know my name)?’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