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5주년 인순이, 4년만에 18집 ‘Umbrella’ 내
까만 조끼, 바지, 신발. 하얀 셔츠. 흰 이. 까무잡잡한 피부. 이 모든 흑과 백은 사내아이처럼 짧게 쳐 올린 반백의 머리로 수렴해 하늘로 뻗쳤지만 가수 인순이는 “난 뮤지컬 ‘시카고’에서 맡은 배역 벨마처럼 센 여자는 아니다”라고 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22일 오후 서울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허스키하면서도 윤기 있는 목소리, 얼굴 곡선이 팽창되는 동그란 웃음이 딱 인순이였다. “해밀학교가 이제 남녀 공학이 돼요!” 4월 강원 홍천에 인순이가 세운 다문화학교 ‘해밀학교’ 말이다.
그는 이 학교의 이사장 겸 교장이다. 여학생 6명으로 개교했는데 다음 달 첫 남학생이 들어온다고. 3년 뒤에는 교육부 인가를 받는 것이 목표다. 예상대로 이 학교의 음악시간은 좀 다르다. 인순이의 코러스 단장인 신지혜 씨가 재능 기부 교사로 나서 아이들에게 딱딱한 교과서 노래 대신 가요를 가르친다.
인순이는 “지드래곤의 노래도 찾아 듣는다”면서 “나이가 들수록 첨단과 보수 사이에서 음악적 적정선을 찾기가 힘들더라.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만들려고 신경을 썼다”고 했다. ‘오늘도 예스 예스 예스/내일도 예스 예스 예스/오라 희망이여/긍정의 힘이여’를 외치는 톡톡 튀는 록 노래 ‘예스 예스 예스’는 인순이가 노랫말을 썼고 인디 밴드 로맨틱 펀치가 연주와 작곡을 했다.
인순이는 이달 4일 서울 지하철 6호선 객차에 나타났다. “대중 속으로 다시 뛰어들자는 생각이었어요. 지하철은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었죠.” 아마추어 밴드가 석계역에서 등장해 전주를 하고 있으면 다음 역인 돌곶이역에서 인순이가 객차에 올라 노래를 시작하는 식의 게릴라 콘서트였다. “깜짝 놀란 승객들 중에는 제 노래를 듣다가 울거나 춤을 춘 사람도 있었죠. 제가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정말 귀한 경험이었어요.” 이때 영상이 그대로 신곡 뮤직비디오가 됐다.
인순이는 이번 앨범에 아버지(‘아버지’), 남편(‘사랑가’), 딸(‘딸에게’)을 향한 노래를 다 담았다. 부르면 가장 눈물나는 이름을 물었다. “엄마죠. 어렸을 때 나이트클럽까지 다니면서 제가 열심히 노래한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엄마가 편찮은데 병원비가 없다면 안 되니까. 다행히 엄마 밥 굶기지 않았고 병원비도 줄 수 있었죠. 하지만 ‘사랑한다’ ‘예쁘다’ 말 한 마디, 안아 주기 한 번은 못해 줬어요.” 인순이는 ‘아버지’를 새로 편곡하며 직접 쓴 내레이션을 더했다. ‘…부디 사랑한다는 말을 과거형으로 하지 마십시오.’
목표를 물었다. “성공을 꿈꾼 건 아니었지만 괜찮은 가수가 됐죠. 이제 학교, 노래, 가족. 이 세 가지만으로도 저는 다 채워지는 것 같아요. 모든 소중한 것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제 ‘꿈 너머 꿈’이 시작됐어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