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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 불굴의 루키 임창용, 꿈의 마운드 서다

입력 | 2013-09-06 03:00:00

돈방석 마다하고 美진출 임창용, 한국인 14번째 메이저리거로 우뚝




임창용(37·시카고 컵스)이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입성에 성공했다. 컵스 구단은 5일 임창용을 40인 확대 로스터에 포함했다. 1995년 해태(현 KIA) 유니폼을 입고 국내 프로야구에 데뷔한 임창용은 2008년 일본(야쿠르트)으로 진출한 데 이어 프로 19시즌 만에 ‘꿈의 무대’에서 뛰게 됐다. 임창용이 5일 마이애미와의 경기를 앞두고 외야에서 롱 토스 훈련을 하고 있다. 포커스케이닷컴 제공

“돈이야 많이 벌면 많이 쓰면 되고, 적게 벌면 적게 쓰면 되죠. 생활비만 주면 메이저리그에 갈 겁니다.”

지난해 초 일본 오키나와 우라소에의 야쿠르트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임창용(37·시카고 컵스)이 했던 말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한국에서는 야구를 할 만큼 했다. 올해가 지나면 일본에서도 5년이니 충분히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 도전을 해보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시즌이 끝난 후 그는 정말 야쿠르트와 결별했다. 잔류했다면 50억 원이 넘는 돈이 보장돼 있었다. 그를 데려가려는 팀은 많았다. 7월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니지만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최고 마무리로 군림한 그는 여전히 매력적인 투수였다. 돈다발을 들고 몰려든 여러 구단 가운데 그가 선택한 팀은 시카고 컵스였다. 돈을 많이 주진 않았지만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마침내 꿈을 향한 그의 도전이 이뤄지게 됐다. 임창용은 5일 마이애미와의 홈경기에 앞서 전격적으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다.

○ “마음만 먹으면 150km”

메이저리그 엔트리가 25명에서 40명으로 늘어나는 9월 2일 그의 이름이 승격 명단에서 빠지자 올 시즌 빅리그 승격이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았다. 하지만 임창용은 5일 에이전트인 박유현 씨와 함께 시어 엡스타인 컵스 사장과 면담한 뒤 곧바로 메이저리그로 승격했다.

임창용은 30분 만에 뚝딱 만들어낸 유니폼을 입고 이날 홈구장인 리글리 필드에 모습을 드러냈다. 팀이 9-7로 역전승하면서 등판 기회를 잡진 못했지만 경기 후반 불펜에서 대기까지 했다. 박 씨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직접 던져보지 않아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 아직 실감을 잘 못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시즌이 끝날 때까지 빅리그를 경험한 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활약할 것”이라고 했다.

현재 임창용의 몸 상태는 정상 컨디션의 80% 정도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미 마이너리그를 평정했다. 임창용은 트리플 A 아이오와 컵스 소속으로 11경기에 등판해 11과 3분의 1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0.79를 기록했다. 또 마이너리그 21차례 등판에서 한 개의 홈런도 맞지 않고 평균자책점 1.61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올렸다. 박 씨는 “임창용은 마음만 먹으면 시속 150km의 빠른 공을 충분히 던질 수 있다. 재활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라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임창용이 마운드에 오르면 1994년 박찬호(당시 LA 다저스) 이후 메이저리그 무대에 오르는 14번째 한국인 선수가 된다.

○ 꿈은 이루어진다

그동안 메이저리그는 그에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이었다. 해외 진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2002년 그는 포스팅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한 구단의 응찰액은 경우 65만 달러(약 7억1000만 원)였고 그는 한국 잔류를 택했다. 완전한 FA가 된 2007년 직후 다시 한 번 도전했을 때도 눈길을 준 구단은 없었다.

그는 메이저리그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 일본 프로야구를 선택했다. 한국에서 받던 돈보다 훨씬 적은 30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를 받고 야쿠르트와 계약했다. 결과적으로는 일본행이 ‘신의 한 수’가 됐다. 일본에서 그는 최고 시속 160km의 ‘뱀직구’를 앞세워 최고 마무리로 등극했다. 5시즌 동안 11승 13패 1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9라는 화려한 기록을 남겼다. ‘미스터 제로’라는 별명도 이때 생겼다. 매년 연봉이 수직 상승하며 100억 원 넘는 돈도 벌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후 꿈의 완결판인 메이저리그를 향해 또 한 번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 37세 루키의 야구는 이제 시작

낯설고 물선 미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먼 이국땅에서 지루한 재활을 견뎌야 했고, 루키리그와 싱글A, 더블A, 트리플A로 이어지는 고단한 마이너리그 생활도 몸으로 이겨내야 했다.

일본에서는 최고급 호텔에 묵고 쉬는 날엔 스포츠카를 몰고 다니는 멋쟁이였지만 미국에서는 짧은 머리에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린 전형적인 ‘루키’였다.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고역이었다. 마이너리그는 대도시가 아니라 중소 도시에서 열리는데 한국 음식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임창용은 맛을 느끼기보다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평소 잘 먹지 않던 고깃덩어리를 삼켜야 했다.

하지만 빅리거가 되면서 그의 인생도 다시 한 번 황금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연봉도 대폭 뛰었고 이동할 때도 전세기를 타거나 비행기 1등석을 탄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괴물 투수’ 류현진(LA 다저스), ‘추추 트레인’ 추신수(신시내티) 등과 선의의 경쟁도 기대를 모은다. 당장 10일부터 추신수가 있는 신시내티와의 방문 경기가 기다리고 있다. 누가 뭐라던 개의치 않고 새로운 야구 인생을 개척해 가고 있는 임창용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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