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보상-지원할 모든 준비 돼있어 vs 어떤 보상도 주민 피눈물 대신못해
한전의 송전탑 공사를 반대하며 농성하는 밀양 주민들. 동아일보DB
● 한전
박규호 한국전력공사 부사장
해마다 많은 사람이 빼어난 절경과 유서 깊은 문화유산을 간직한 신비의 고장 밀양을 찾는다. 보물로 지정된 영남루, 사자평의 억새밭을 비롯하여 한여름 얼음골 계곡 등이 대표적인 명소이다. 무안면에는 임진왜란 때 의승병을 일으켜 백성을 구한 사명대사의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그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표충사에는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 밀양에는 하루빨리 송전탑 갈등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주민도 많다. 송전탑이 지나는 5개 면 마을의 주민 대표들로 구성된 주민대책위원회는 송전탑 건설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합의 노력에 앞장서고 있다. 이들의 조용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전은 여러 방면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방안을 거듭 고심하며 주민의 입장에 가까이 다가서고자 노력해 왔다. 경영진은 수시로 밀양에 내려가 현안을 살피고 직원들도 자발적으로 가족들과 함께 밀양을 찾고 있다.
또한 가칭 송전선로 주변 지역의 보상과 지원을 위한 ‘송주법’안이 내달 열리는 국회에서 최우선적으로 처리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하락 지가 보상과 주택 매수 청구제도가 신설되고 전기요금 감면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매년 시행할 수 있다. 특히 주민들이 원하는 경우 개별 지원을 즉각 시행할 수 있도록 이미 한전 특수보상 내규를 개정하여 지원 근거도 마련해 놓은 상태다.
그뿐만이 아니다. 최근에는 밀양시의 중재 아래 ‘밀양 송전탑 갈등해소 특별지원협의회’도 발족하였다. 한전은 새롭게 구성된 특별지원협의회를 통해 주민과 더불어 실질적인 보상과 지원이 이뤄지도록 대화와 합의 노력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다. 165억 원의 지역특수보상안과 빛고을 밀양의 태양광발전사업, 항공방재 불가지역 보상과 500평에 달하는 농특산물 공동 판매시설 신축 등 기존에 한전이 약속한 13개 특별지원안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실행해 나가고자 한다.
전기가 들어오는 날이 마을 잔칫날이었던 필자의 어린 시절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30여 년을 전력 현장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반대 주민들이 대승적인 이해와 용단으로 갈등 해결에 힘을 모아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삶의 터전과 주민재산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한전의 약속을 믿고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나서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의 명승이자 살생을 금하는 불법의 수호자였던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이끌기까지의 고뇌를 그 누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사명대사는 지금 고향에서 벌어지고 있는 송전탑 갈등의 해법을 알고 있을까. 문득 뜨거운 밀양의 호국성지 표충사에서 생각에 잠겨 본다.
● 주민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지난 8년의 투쟁 과정에서 주민들은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수차례 공사 강행 과정에서 현장 인부들로부터 당했던 말할 수 없는 인권 유린, 고소 고발 남발에 따른 경찰 조사, 심지어 분신까지 초래한 용역 투입은 일평생 농사지으며 정직하게 살아온 농민들의 분노와 모멸감을 자극했다.
정부와 한전은 여전히 ‘보상’을 이야기한다. 그 어떤 보상안도 주민들이 입게 될 피해와 고통을 해소할 수 없다. 예컨대, ‘송주법’을 통해 송전선로 좌우 180m 이내 주민 주택을 사들이겠다고 한다. 그러면 190m 지점에 사는 주민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리고 180m 이내에 살아서 주택이 팔리더라도, 그 돈으로 다시 다른 곳에 집을 구해 매일 논밭으로 출퇴근해야 하는가? 지금 부동산 가격을 고려했을 때 그 돈으로 다른 주택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주민들은 신고리∼북경남 765kV 송전선로가 영남권 전력수급 해소를 위해서 건설된다는 사실도 믿기 어려워한다. 고작 대구권 이남의 전력 부하 감당을 위해 이런 초고용량의 송전선로가 건설되어야 한다는 한전의 논리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전력대란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밀양 송전탑 공사를 마무리짓고 신고리3호기 전력을 수송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신고리 핵발전소 3호기는 부품성적 위조로 완공 시기가 언제가 될지 한수원조차도 제대로 된 계획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설령, 부품성적서 위조로 인한 공사 지연이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밀양 구간 공사 기간과 발전기 시운전 기간을 고려할 때 신고리3호기가 내년 여름철 이전에 전력계통에 병합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전문가협의체를 통하여 밀양 송전선로를 건설하지 않고도 기존 3개 선로를 통해 송전이 가능하며, 송전선로 과부하로 발전기가 탈락하여 발생한 광역정전은 지난 13년간 단 한 건도 없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리고 밀양 구간 지중화도 한전이 주장하듯 2조7000억 원이 아니라 5900억 원 수준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확인했다.
우리가 막무가내로 이 사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만들어진 전기는 어떻게든 송전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많은 노인들의 삶의 근거지를 결딴내면서, 그들이 일구어온 일생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면서 그들의 피눈물을 타고서 이 전기가 흘러가야 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선 TV토론을 열어 밀양 송전탑 문제에 관한 쟁점들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공론 기구를 통해 밀양 문제의 4대 쟁점(타당성, 재산권, 건강권,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박규호 한국전력공사 부사장
이계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