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광화문에서/정용관]그는 왜 안철수를 떠났을까

입력 | 2013-08-22 03:00:00


정용관 정치부 차장

“사람들은 인상이 부드럽거나 선해 보이면 약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중략) 선하면서 강할 수 있고 악하면서 약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안철수의 정책그룹 수장에서 갑작스레 물러났다는 소식을 접한 순간 ‘안철수의 생각’ 첫머리에 나오는 이 글귀가 떠올랐다. 선한 권력은 가능한가? 지난 대선 때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화두 중의 하나다. 안철수 현상을 놓고 숱한 해석이 나왔지만 기자에겐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찬 젊은층의 선한 권력, 착한 권력에 대한 갈망으로 읽혔다. 안철수는 속으로 “내가 바로 선하면서 강한 사람이야”라고 외쳤던 것 아닐까.

대선을 완주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그는 권력의 ‘악마적 속성’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한 듯했다. 최 교수를 자신의 싱크탱크 수장으로 영입한 것도 의외였다.

진보 성향의 최 교수는 ‘비정치적’ 정치학자로 평가받는다. 요즘도 광화문의 한 작은 사무실에서 혼자 책을 읽고 사람들 식사 시간대를 피해 식당을 찾을 때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경차를 직접 몰고 다닐 만큼 외양을 중시하지도 않는다. 그의 제자 그룹도 70세 스승의 ‘안철수행’에 반대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최 교수가 안철수 진영에 합류한 건 단지 안철수가 귀국할 때 자신의 저서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을 들고 오는 성의를 보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 교수는 현실 정치를 해석하며 ‘포르투나(fortuna·운명)’와 ‘비르투(virtu·개인의 역량)’라는 용어를 즐겨 쓴다. 올해로 출간 500주년을 맞은 마키아벨리의 저서 ‘군주론’ 25장의 키워드다. 최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대선의 야권 패배에 대해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가 손짓했지만, 이를 자기 것으로 거머쥘 수 있는 담대한 능력, 즉 비르투는 없었다”고 진단했다. 최 교수가 안철수에게 원했던 것도 그런 비르투였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적대적 공존구조’를 깰 수 있는 신당 창당, 이를 관철할 역량, 용기, 과감성….

80일 만의 사퇴는 안철수 못지않게 최 교수 자신에게도 상처였다. 주변에선 “장하성 고려대 교수와 그를 중심으로 한 8인이 실질적으로 정책네트워크를 운영했고 정작 이사장인 최 교수의 역할은 애매했다” “민주당 토론회에 가서 학자적 양심에 따라 평소 지론을 펼쳤다가 안철수의 대리인 아니냐며 난타를 당하고 힘들어했다” 등의 얘기도 들린다. 어떤 곡절이 있었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건 안철수가 ‘십고초려’ 끝에 영입했다는 원로 학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지 못했다는 사실이고, 이 또한 최 교수가 그토록 강조해 온 비르투의 영역에 속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세력화이기 때문이다.

비르투는 쉽게 말해 ‘대통령감’이라고 할 수 있다. 안철수는 사석에서 “어느 다선 의원을 만났더니 ‘노원병 보궐선거에 나오지 말고 가만히 있다가 타이밍 봐서 등장하는 게 다 나은 것 아니냐’고 하더라. 나는 생각이 다르다. 진흙탕에 가능한 한 일찍 들어가서 부딪혀 보고 단련시키고 해서 그걸 이겨 내고 ‘감’이 되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거고, 아니면 안 되는 거다”라고 했다.

지금 당장 차기 대선 주자 지지율 조사를 하면 안철수는 1, 2위에 랭크될 가능성이 높다. 4년 뒤 안철수는 어떤 모습일까. 당장 10월 재·보선, 내년 지방선거, 2016년 총선 등을 거치며 점점 단련될 것인가, 서서히 잊혀질 것인가. 비르투는 타고나는 것일까, 길러지는 것일까. 정치적 비르투와 사업적 비르투는 같은 걸까, 다른 걸까. 정치의 세계는 매 순간이 생사의 기로다. 언젠가 본 드라마의 한 대사가 뇌리를 스친다. “선한 사람이란, 아직 악한 상황에 처하기 전 사람일 뿐이다.”

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