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 치유활동가 프로그램 1기 박희옥 수녀-곽정숙 씨
8일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치유의 경험을 나누며 활짝 웃고 있는 박희옥 수녀(오른쪽)와 곽정숙 씨. 그들은 “속마음을 털어놓고 공감과 위로를 받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말을 하는 순간 치유가 된다니. 마치 먹기만 하면 단기간에 체중을 줄일 수 있다는 다이어트 약 과장 광고 같다. 서울시의 시민 힐링 프로젝트인 ‘누구에게나 엄마가 필요하다’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감이다.
시는 전문가가 일반인에게 하는 수직적인 상담이 아니라 마음속 상처를 치유한 시민이 치유활동가가 되어 또 다른 시민들에게 치유를 경험하게 하는 ‘치유릴레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6∼7월 24명의 활동가를 양성한 1차 프로그램에 참여한 박희옥 수녀(55)와 곽정숙 씨(57·여·경로당 코디네이터)를 8일 서울시청에서 만나 5주간의 치유 경험을 들어봤다.
프로그램은 1주일에 한 차례 2시간씩 진행됐다. 24명을 4명씩 6개조로 나눠 조별로 얘기를 나누는 형식이었다. 빙고게임도 하고 ‘내 인생에서 가장 추웠던 날’ ‘기억에 남는 밥상’ ‘내 인생의 아리랑 고개’ 등의 주제로 얘기를 털어놨다. 주제는 가슴속의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한 매개였다. 마지막에는 ‘자기마감’이라는 글쓰기를 통해 속마음을 정리하고 직접 소리 내어 읽었다.
그런데 가족과 친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털어놨을 뿐인데 감정에 변화가 찾아왔다. 박 수녀는 “내 얘기에 공감하는 걸 보면서 ‘모두가 나를 지지하는구나’ ‘혼자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며 “수도자로서 늘 원칙만 강조하고 남에게 너그럽지 못했는데 요즘 ‘왠지 여유 있어졌다’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곽 씨도 “서로의 상처를 털어놓다 보니 내 아픔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위안을 받았다”며 “평생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내 빛 뒤로 그만큼 큰 그림자가 있었음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털어놨다.
치유의 경험을 전파하는 것은 또 다른 도전이다. 곽 씨는 “독종이고 완고한 내 성격 탓에 그동안 고생했을 남편과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평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 수녀도 “사목과정에서 진정으로 아픔을 공감하면서 얘기를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을 주도한 정혜신 서울시 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은 “도시의 팍팍한 생활 속에서 공감과 지지, 위로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2차 프로그램은 8월 말부터 6주(프로그램 5회, 워크숍 1회) 동안 진행되며, 16일까지 e메일(join@momproject.net) 또는 홈페이지(www.momproject.net), 정신보건사업지원단(02-3444-9934, 내선 235∼6)을 통해 신청을 받는다.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엄마가 필요해’ 방으로 들어가 신청해도 된다.
김재영 기자 red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