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기능 못하는 ‘무더위 쉼터’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서울 종로구 ‘종로6가 경로당’. 벽에 곰팡이가 가득하고 냉방시설이라곤 고장난 구형 에어컨과 선풍기 한 대가 전부여서 최근 노인들의 발길이 끊겼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긴 장마 탓인지 벽에는 시커멓게 곰팡이가 피어 있고 실내에는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1987년에 설치된 창문형 에어컨이 있었지만 그나마 고장 난 상태. 한 할아버지는 “계속 나오던 노인들도 너무 덥고 냄새가 난다며 발걸음을 끊는 판”이라고 말했다. 폭염 때 누구든 와서 쉬어가라고 서울시가 공식 지정한 ‘무더위쉼터’의 현실이다.
폭염이 시작됐지만 노인 등 취약계층의 폭염 대피처인 무더위쉼터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경로당과 복지관, 주민자치센터 등 무더위쉼터는 서울 3391곳 등 전국에 3만9789곳에 이른다.
5일 찾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 미주아파트 경로당. 에어컨은 있지만 가동은 하고 있지 않았다.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에어컨을 켜면 바로 꺼지기 때문이다. 경로당을 들렀던 인근 주민 김모 씨는 “동네 주민들이 다 모이는 정도가 아니면 1년에 한두 번 켤까 말까”라고 말했다.
특히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시간에 문을 닫는 것이 문제다. 5일 후암동의 경로당 두 곳은 더위가 한창인 오후 4시경에 이미 문을 닫았다. 저녁 시간과 주말에 문을 열지 않는 것도 이용률을 낮추는 이유 중 하나다. 서울의 경우 폭염특보가 내릴 경우에만 전체 쉼터 중 26%인 875곳이 야간과 주말에 연장 운영한다.
물론 무더위쉼터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 있는 곳도 있다. 5일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주민자치센터 경로당은 방 2곳에 모두 에어컨과 선풍기가 설치돼 있었다. 할머니 20여 명이 담소를 나누거나 3, 4명씩 모여 화투를 치고 있었다. 경로당에 매일 나온다는 한 노인은 “날이 더워서 매일 시원한 이곳으로 온다. 에어컨을 항상 틀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쉼터에조차 나올 수 없어 쪽방에서 무더위를 고스란히 견뎌내는 노인도 많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거주하는 원금순 할머니(84)는 창문도 없는 방에 선풍기 한 대만 켜놓고 지내지만 집 밖을 벗어나기 힘들다. 원 할머니는 “가장 가까이 있는 무더위쉼터가 중계마을복지회관인데 관절염을 앓고 있어 고지대의 집에서 평지의 복지회관까지 오가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쪽방에 거주하는 빈곤층 노인, 주변의 눈길이 덜 미치는 홀몸노인, 건강 악화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은 전국적으로 52만 명에 이른다.
김재영·이서현 기자·채널A 김정우 기자 red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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