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수 논설위원
요즘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의원입법(국회의원이 발의하는 입법)과 관련해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자기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반대 발언을 하거나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법을 발의했는지도 모르고 졸속 입법을 한다는 얘기다. 심사숙고하지 않은 규제가 양산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반대로 정부는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겠다며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 개혁’을 주문하면서 “모든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라” 같은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기업 현장을 찾아다니며 ‘규제 완화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라 규제를 완화했고,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 뽑기’를 통해 대기업 규제를 많이 풀었다. 그러나 기업이나 국민이 느끼는 체감 규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등록 규제 건수는 2008년 5186건에서 2012년 1만3914건으로 되레 4년 만에 2.7배로 늘었다.
새로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법안들을 보면 더 기가 찬다. 화학물질관리법의 ‘유독물 영업허가권’은 2002년 환경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됐다. 그런데 불산가스 등 유출 사고가 잇따르자 올해 법을 개정하면서 다시 환경부로 환수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문제가 많다고 해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없앴는데,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살아났다.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 없앴다가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했다. 이처럼 규제를 없앴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엉망진창, 누더기 법안이 우리의 현실이다.
규제는 영어로 regulation(s)이다. 자유와 권리의 제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복리를 위한 사회적 규칙, 일련의 법령 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법치 국가에서 민법 형법 외에 (규제가 많이 포함된) 행정법 등의 법령은 당연히 필요하다. ‘모든 규제는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 10% 줄이기’ 같은 방식으로는 규제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 규제 개혁을 할 때마다 공무원들은 숫자 위주로 미미한 규제들만 없애는 바람에 실질적인 효과가 전혀 없었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그런데, 내일도 모레도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올 저 법안들을 다 어쩐단 말인가!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