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조부데스(괜찮습니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그는 제 표정에서 이미 ‘행간의 숨은 뜻’을 파악했는지 연신 “다이조부데스”를 외쳤습니다. 정말 괜찮은 걸까….
광고 로드중
그런데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스카프를 두른 남성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흰색 긴팔 셔츠에 스카프를 두른 것은 기본이고 셔츠와 재킷을 다 입고 스카프를 두른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상황에 스카프라니. 멋이라 하기엔 ‘무리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신주쿠, 시부야 등 도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유명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 가봤더니 남성복 파는 곳에는 으레 스카프가 서너 개쯤은 걸려 있었습니다. 아예 스카프만 따로 파는 매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백화점의 한 직원은 “일본 남성들은 무언가 길게 늘어뜨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카프도 그런 멋을 내는 소품 중 하나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단체로 목감기에 걸린 건 아닌 듯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나가와 역 앞 신호등에서 한 남성을 봤습니다. 오후 2시. 검은색 재킷에 흰색 바지를 입은 그의 목에도 갈색 스카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광고 로드중
인상을 찡그린 저와 달리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습니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그는 다시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그 순간 최근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올해 각광받는 여름 남성패션 중 하나는 긴팔 셔츠나 긴팔 재킷에 반바지를 입는 형태입니다.
격식을 차린 듯 차리지 않은 듯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이 패션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 흰색 긴팔 재킷, 채도 높은 파란색 반바지로 한껏 멋을 낸 채 주말 파티 장소에 갔을 때 친구들은 “여름에 웬 긴팔이냐” “안 덥냐”며 항의 수준으로 핀잔을 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반팔보다 긴팔이 더울 수는 있겠죠. 춤추며 놀기에도 반팔보다 긴팔이 거추장스럽겠죠. 그러나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에 비하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광고 로드중
긴팔에 반바지를 입은 제게 ‘시원한 반팔’이 중요하지 않듯 도쿄에서 만난 ‘스카프 맨’에게도 땀띠쯤은 참을 수 있는 존재요, 한낮 무더위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패션 이즈 페인(Fashion is Pain), 때로 고통스러워도 중요한 것은 남의 눈치가 아니라 내 만족감 아닐까요? 그래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참지는 마세요. ‘페인’을 외치다 ‘폐인’ 될 수 있으니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