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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style Diary]도쿄男들 한여름 스카프 열정, 왜?

입력 | 2013-07-18 03:00:00


“다이조부데스(괜찮습니다)!”

“에이, 아닌 것 같은데….”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그는 제 표정에서 이미 ‘행간의 숨은 뜻’을 파악했는지 연신 “다이조부데스”를 외쳤습니다. 정말 괜찮은 걸까….

지난주 일본 도쿄 출장에서 만난 일본 남성들 얘깁니다. 초여름의 도쿄는 엄청나게 무더웠습니다. 제 몸에선 땀이 주르르 ‘육수’처럼 흘렀습니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스카프를 두른 남성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흰색 긴팔 셔츠에 스카프를 두른 것은 기본이고 셔츠와 재킷을 다 입고 스카프를 두른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흐르는 상황에 스카프라니. 멋이라 하기엔 ‘무리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신주쿠, 시부야 등 도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유명 백화점 남성복 매장에 가봤더니 남성복 파는 곳에는 으레 스카프가 서너 개쯤은 걸려 있었습니다. 아예 스카프만 따로 파는 매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백화점의 한 직원은 “일본 남성들은 무언가 길게 늘어뜨리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스카프도 그런 멋을 내는 소품 중 하나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단체로 목감기에 걸린 건 아닌 듯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나가와 역 앞 신호등에서 한 남성을 봤습니다. 오후 2시. 검은색 재킷에 흰색 바지를 입은 그의 목에도 갈색 스카프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소 더운 듯 그는 한 손으로는 가방에서 부채를 꺼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스카프를 ‘해체’했습니다. 순간 빨갛다 못해 익은 듯한 그의 뒷목을 목격했습니다. 땀띠가 날 정도로 스카프를 둘러야 했던 이유는 뭘까. 저도 모르게 그에게 “괜찮으냐”고 말을 건넬 정도였습니다.

인상을 찡그린 저와 달리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습니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그는 다시 스카프를 목에 두른 채 횡단보도를 건넜습니다.

그 순간 최근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올해 각광받는 여름 남성패션 중 하나는 긴팔 셔츠나 긴팔 재킷에 반바지를 입는 형태입니다.

격식을 차린 듯 차리지 않은 듯 경계를 넘나드는 모습이 이 패션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얼마 전 파란색 줄무늬 티셔츠, 흰색 긴팔 재킷, 채도 높은 파란색 반바지로 한껏 멋을 낸 채 주말 파티 장소에 갔을 때 친구들은 “여름에 웬 긴팔이냐” “안 덥냐”며 항의 수준으로 핀잔을 준 적이 있습니다.

물론 반팔보다 긴팔이 더울 수는 있겠죠. 춤추며 놀기에도 반팔보다 긴팔이 거추장스럽겠죠. 그러나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에 비하면 그 정도는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난 아무렇지 않은데”라며 볼멘소리로 항변을 해봤지만 여름이면 무조건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어야 하는 친구들에게 전 ‘화성인’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긴팔에 반바지를 입은 제게 ‘시원한 반팔’이 중요하지 않듯 도쿄에서 만난 ‘스카프 맨’에게도 땀띠쯤은 참을 수 있는 존재요, 한낮 무더위는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 아닐까요.

패션 이즈 페인(Fashion is Pain), 때로 고통스러워도 중요한 것은 남의 눈치가 아니라 내 만족감 아닐까요? 그래도 도가 지나칠 정도로 참지는 마세요. ‘페인’을 외치다 ‘폐인’ 될 수 있으니까요.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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