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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유머와 아이러니의 차이를 아십니까?

입력 | 2013-07-13 03:00:00

◇인문학개념정원/서영채 지음/276쪽·1만1000원/문학동네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철학아카데미 엮음/416쪽·1만8000원/도서출판 동녘




라캉은 생후 6∼18개월의 유아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아개념을 형성한다면서 이를 ‘거울단계’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렇게 형성된 ‘나’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착각의 산물이다. 상상계는 이런 착각의 지배를 받는데 라캉은 그 메커니즘을 오인이란 뜻의 프랑스어 메코네상스(m먆connaissance)로 불렀다. 이 단어는 자기인식을 뜻하는 므코네상스(me-connaissance)로도 읽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

#1. 조촐하지만 우아한 와인 파티가 열리고 있다. 다양한 화제를 놓고 이야기꽃과 웃음꽃이 피는 그곳에서 누군가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진다. “유머와 아이러니의 차이를 잘 모르겠는데 누군가 설명 좀 해줘.” “유머는 우리말로 해학쯤 되고 아이러니는 반어잖아.” “그 정도는 나도 알겠는데 우리가 흔히 유머러스하다고 말할 때와 아이로니컬하다고 표현할 때의 미묘한 차이를 명쾌하게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래.”

이 순간 누군가 나서 이렇게 말한다. “그에 대해선 들뢰즈가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지. ‘아이러니가 가학적 웃음이라면 유머는 피학적 웃음’이라고. 예를 들어 어떤 신호등이 고장 났을 때 반드시 지키라고 있는 그 신호등을 깨끗이 무시하는 것이 교통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가학적 상황을 아이로니컬하다고 한다면, 교통경찰의 수신호를 못 본 척하면서 ‘무슨 소리냐, 신호를 지켜야지’라는 자세로 일부러 교통법규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통해 교통법규 전체를 조롱하는 것을 유머러스하다고 할 수 있어.”

#2. TV를 꺼놓고 고등학생 아들과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아들이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고 묻는다. “아빠, 은유법은 직유법과 짝을 이루고 환유법은 제유법과 짝을 이루잖아요. 그런데 왜 자꾸 은유와 환유를 대비하는 사람이 많은 거예요?”

이 순간엔 이렇게 답해보자. “좋은 질문이다. 영어로 은유는 메타포, 환유는 메토니미라고 하는데 똑같이 알파벳 m으로 시작하기에 은유와 직유를 하나의 개념쌍, 환유와 제유를 또 다른 개념쌍으로 묶을 때 그 둘을 대표선수로 내세워서 그런 거란다.”

아들이 다시 묻는다. “개념쌍 두 개의 차이가 뭔데요?” 아빠의 답. “우리의 언어능력 중에 은유는 주어진 상황에 적확한 단어를 끌어내는 선택기능과 연관돼 있고 환유는 인접한 단어를 규칙에 맞게 배열하는 결합기능과 연결돼 있단다. 전자는 구심력이 강하고 후자는 원심력이 강하지. 그래서 사물의 핵심을 꿰뚫어야 하는 시인은 은유에 강하고, 풍부한 디테일 묘사에 능한 소설가는 환유에 강하단다.”

#3. 최근 욕구불만에 시달리는 여자친구를 달래려 나갔는데 불쑥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요즘 내 마음을 치유하려고 라캉의 책을 읽고 있는데 욕구와 요구, 욕망의 의미가 다르다는 거야. 나한테는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이게 어떻게 다르다는 거야?” 그 순간 당황하지 않고 이렇게 자상하게 설명해주는 당신을 상상해보라.

“네가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배가 고팠다고 쳐봐. 빈 배 속을 채우고픈 게 욕구야.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엄마, 배 고파요’라고 말하는 것은 요구에 해당해. 그런데 엄마가 ‘너 좋아하는 라면이나 끓어 먹으렴’ 하고 나가버려. 할 수 없이 네가 직접 라면을 끓여 먹다가 남은 국물을 마실 때쯤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공허감이 밀려오지. 그게 바로 욕망이야. 욕구와 요구 사이에 존재하는 나머지 차이 전체를 라캉은 욕망이라고 부른 거지.”

문학평론가 서영채 씨가 쓴 ‘인문학개념정원’을 읽는다면 위의 3가지 장면이 모두 가능해진다. 이 책에는 20세기를 전후해 언어학과 정신분석학, 현대철학이 빚어낸 다양한 인문학적 개념을 명쾌하고 알기 쉽게 풀어냈다.

그렇게 압축해 설명할 수 있는 힘은 그 개념을 개론서가 아니라 원전 독서를 통해 끌어냈다는 점에 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 의식, 전의식 개념이 어떻게 이드, 자아(에고), 초자아(슈퍼에고)로 전환됐고 이것이 다시 라캉에 의해 어떻게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발전돼 갔는지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것도 그 덕택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 분야 고수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주변 사람 몰래 나 홀로 탐독하고픈 욕심이 들게 할 만하다.

같은 시기에 출간된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 철학’은 프랑스 사상가 12명의 사상을 압축해 소개한다. 지난해 가을과 겨울 철학아카데미에서 이뤄진 각 분야 최고 강사들의 인기강연을 엮은 책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개척자 장 폴 사르트르로부터 유일하게 생존한 알랭 바디우 같은 철학자는 물론이고 모리스 블랑쇼와 롤랑 바르트, 줄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문학평론가도 포함돼 있다.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르네 지라르가 빠진 점은 아쉽지만 인문학개념정원을 가이드로 삼는다면 이들 알프스의 고봉준령 등정도 도전해볼 만하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