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청이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조달 시장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체로 위장해 지난해에만 708억 원어치의 입찰 물량을 가져간 것으로 드러났다. 위장 계열사를 세워 중소기업 물량을 가로챈 대기업은 쌍용레미콘, 성신양회, 유진기업, 동양그룹, 삼표그룹, 한국시멘트, 대상, 금성출판사, 리바트, 한샘, 다우데이터, 한일산업 등 13개에 이른다. 이들이 설립한 위장 중소기업 36개 가운데 30개가 레미콘업체였다.
정부가 대기업의 입찰을 제한하고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공공조달 시장 품목은 202개다. 중소기업을 육성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이 시장에는 2만7000개 중소기업만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영역을 넘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대기업은 자기 회사 출신 임원으로 하여금 중소기업을 만들게 하고 자신들이 운영하던 공장을 임대해줬다. 이들은 속은 대기업이지만 겉으로는 중소기업 간판을 내걸고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했다.
쌍용레미콘은 중소기업으로 위장한 레미콘 업체를 7개 보유하고 있었다. 성신양회는 6개, 유진기업과 동양그룹은 각각 5개, 삼표그룹은 4개의 위장 회사로 중소기업에 가야 할 몫을 챙기고 있었다. 세종시를 새로 조성하면서 정부 발주 건설 물량이 쏟아지자 대기업들은 다투어 가로채기에 나섰다.
이번에 적발된 위장 중소기업들은 공공조달 시장에서 퇴출돼 앞으로 입찰에 참여할 수 없다. 하지만 현행법으로는 이들을 처벌할 길이 없다. 정부는 올해 9월부터 규정을 바꿔 이런 사실이 밝혀질 경우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릴 방침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의 조치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이 ‘벼룩의 간’을 빼먹는 횡포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