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이근배(1940∼)
내가 문을 잠그는 버릇은
문을 잠그며
빗장이 헐겁다고 생각하는 버릇은
한밤중 누가 문을 두드리고
문짝이 떨어져서
쏟아져 들어온 전지(電池) 불빛에
눈을 못 뜨던 버릇은
머리맡에 펼쳐진 공책에
검은 발자국이 찍히고
낯선 사람들이 돌아간 뒤
겨울 문풍지처럼 떨며
새우잠을 자던 버릇은
자다가도 문득문득 잠이 깨던 버릇은
내가 자라서도
죽을 때까지도 영영 버릴 수 없는
문을 못 믿는 이 버릇은.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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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 시인의 ‘문’은 그 다름을 소화하지 못해 벌어졌던 섬뜩하고 오싹한 상황을 복기한다. 숱한 질곡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6·25가 배경이다. 시인은 독립운동을 했던 남로당원 아버지를 열 살 때 처음 보고 1년 남짓 같이 살다 전쟁이 나면서 헤어졌다 한다. 군홧발로 문을 차고 들어온 사람들이 전짓불을 들이대고 집안을 뒤졌던 그때, 삶이 불안했던 그 세월이 ‘문을 못 믿는 버릇’으로 압축된 것이다. 이청준의 소설 ‘소문의 벽’ ‘전짓불 앞의 방백’에도 경찰인지 공비인지 정체 모를 사람들이 밀어닥쳐 손전등을 비추며 어느 편인지 다그치던 시대적 체험이 스며 있다.
한밤중 저벅저벅 다가온 발소리와 눈을 찌르는 전짓불이 남긴 상흔은 과거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의 현재로 쳐들어와 미래를 잠식할 태세다. 온갖 잣대로 편 가르기를 강요하고 다름을 기준 삼아 불이익을 주고 비난을 퍼붓는 사회에서 자기 보호를 위한 몸 사리기와 검열은 날로 깊어진다. 아직도 내 존재를 위협하는 문에 떨고 있는 우리는 더 교묘하고 서슬 퍼런 전짓불의 추궁이 기다리는 사회를 만들었다. 무자비한 질문이 오늘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너는 누구 편이냐?’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