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추락에 대비한 장치’, 곧 낙하산은 우리나라에서 이상한 용어로 변질됐다. 채용이나 승진 따위의 인사에서, 배후에 있는 높은 사람의 은밀한 지원이나 힘을 빌리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 된 것이다. 해당 조직에서 보면 뜻밖의 인물이 난데없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기술계에 최근 형성되고 있는 기관장급의 인사기상도(人事氣象圖)를 보면 바람을 가득 안은 낙하산이 여기저기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조만간 앞다투어 착지를 시도할 것이다. 낙하산이 죄다 나쁜 것은 아니다. 봄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처럼 둥둥 떠다니다 아무 데나 내려앉아 쓸데없는 꽃을 피우는 낙하산이 문제다.
광고 로드중
박근혜 대통령은 올 4월 국무회의에서 장관이 실질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결과를 책임지는 책임장관제를 실시하며, 공공기관은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뜻이 아무리 옳다고 해도 장관들이 따라가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다. 관련 기관장의 인사에 대해 장관들이 어떤 책임의식을 갖고 챙기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정철학? 거 참, ‘국민정서’만큼이나 애매한 말이다. 임기가 남은 기관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고안한 용어처럼 보인다. 국정철학을 공유한다는 신임 낙하산 기관장은 왜 하나같이 공무원 출신일 것 같은 예감이 들까? 공무원이 아니면 국정철학을 공유하기 어려운 걸까? 장관은 그 낙하산 인사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질 각오를 하고 있을까?
낙하산은 비행기보다 먼저 발명됐다. 추락에 충분히 대비한 뒤에야 비행을 시도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누구의 추락에 대비한 낙하산일까? 자칫하면 고위직에 있던 공무원이나 정치권 인사 같은 개인의 추락에 대비한 장치일 수 있다. 개인의 추락에 대비한 용도에 그친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추락을 두려워하는 그들이 차지한 조직은 점점 더 무기력해지거나 더 부패하기 십상이다. 원자력계의 오랜 동종교배식 낙하산이 최근 잇달아 원전 비리를 일으킨 ‘원자력 마피아’를 키웠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낙관론자가 비행기를 발명하면 비관론자는 낙하산을 발명한다’는,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을 되새겨 보자.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한 이유는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싶어서였지만, 르노르망이 낙하산을 발명한 이유는 건물에 불이 나 갇힌 사람들이 안전하게 탈출하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광고 로드중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