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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21세기판 ‘빨간 모자’… 새드 엔딩? 해피 엔딩?

입력 | 2013-06-08 03:00:00

◇빨간 모자/로베르토 인노첸티 그림·에런 프리시 글·서애경 옮김/32쪽·1만9000원·사계절




‘빨간 모자’는 두 가지 버전이 있습니다.

할머니와 빨간 모자 모두 늑대에게 먹히는 결말은 17세기 프랑스 샤를 페로의 것입니다. 100년 후 그림 형제는 사냥꾼에게 구출되는 이야기로 바꿔서 책을 내지요.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그림 형제 버전을 읽고 있습니다.

논픽션 작가이자 편집자인 에런 프리시가 글을 쓰고, 로베르토 인노첸티가 그린 ‘빨간 모자’는 두 가지 결말을 함께 들려줍니다. 배경이 현대 도시 공간으로 옮겨져 어쩌면 아이들이 더 쉽게 몰입할 수도 있지만 ‘이야기란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장치로 안심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책은 거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읽게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이야기 속 시간도 그 방향으로 흘러가지요. 그림의 인물들도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안정되어 보입니다. 그런데 표지 그림의 주인공은 이야기 흐름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독자들에게 불안을 감각적으로 알아차리게 하려는 의도가 보입니다. 이 책의 서사에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작가의 의지도 느껴집니다.

인노첸티는 책 전반에 걸쳐 도시라는 공간 속에서 작은 여자아이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최악의 폭력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수많은 장치를 그려 넣었습니다. 도시는 지극히 기능적이고 냉소적이며 어둡게 표현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모인 공간에도 폭력적인 요소가 널려 있습니다. 주인공이 가고 있는 방향에 서있는 각종 표지판, 화살표, 낙서, 광고들은 끊임없이 치밀하게 위험을 알리고 있지요.

그런데 아이를 지켜보는 듯 이곳저곳에 있던 눈동자들은 정작 뒷골목 자칼들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모두 사라져 버립니다. 작가가 내내 이야기 속 주인공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심정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책을 읽는 아이들 역시 그 불안을 따라가며 당연히 슬픈 결말을 예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야기 할머니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려주지요.

아이들은 약한 존재입니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환경을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어른으로서 진심으로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듭니다.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