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남편과 화가 아내… 전경수 서울대 교수-이경희 씨 부부가 사는 법
“아이고, 내가 이 거지발싸개 같은 것들을 다 모아가지고…, 하하.”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오른쪽)가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민예품을 자택 정원에 늘어놓았다. 전 교수는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흰 수염 때문에 ‘그리스인 조르바’를 연상시켰다. 멜빵바지가 잘 어울리는 화가 아내 이경희 씨는 소녀처럼 웃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 인류학자 남편과 화가 아내는 결혼 40주년을 맞은 지금도 찰싹 붙어 다닌다.
인류의 원형과 전통이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남편이 답사를 하는 동안 아내는 그 지역의 주민과 자연을 그린다. 그렇게 남미와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세계 구석구석을 함께 다녔다.
실크로드에서는 찜통 같은 버스를 타고 사막을 건넜고, 대만의 원주민 마을에 들어가 함께 지내기도 했다. 전경수 서울대 인류학과 교수(64)와 화가 이경희 씨(64·예명 누미) 부부 이야기다. 》
4일 찾은 서울 강남구 세곡동 자택은 과연 인류학자와 화가가 함께 사는 집이었다. 거실에는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전통 민예품과 이 씨가 그린 이국적인 수채화로 가득해 작은 인류학 박물관 같았다. 동갑내기 부부는 각각 서울대 문리대와 미대 67학번으로 캠퍼스에서 처음 만났다.
이들은 2009년 12월과 2010년 8월 1개월씩 파푸아에서 지냈다. 호주 북쪽에 자리한 섬 파푸아는 312개 부족과 276개 언어,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하는 인류학 연구의 보고(寶庫). 전 교수가 파푸아를 답사지로 택한 것은 일본 인류학자 이즈미 세이이치(泉靖一)의 연구 족적을 찾기 위해서였다. 이즈미는 태평양전쟁 때 일본 해군의 점령지였던 파푸아 비악 섬에서 인류학 자료를 수집했고 그 상당수가 서울대박물관에 있다. 전 교수팀은 비악 섬 북쪽 해안의 소르 마을에 머물며 마을의 구조와 역사, 문화, 종교, 풍습을 관찰했다.
이 씨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마을학교 교실에서 연 작은 사진전을 꼽았다. “처음 파푸아에 갔을 때 제가 카메라를 드니 주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아주 좋아하더라고요. 두 번째 방문 때 사진 200여 장을 인화해 전시하고, 주민들에게 각자 찍힌 사진을 나눠줬죠.”
그 마을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었다. 주민들은 죽은 가족의 유골을 집안에 모셔두고, 마당에 무덤을 둔다. 주민 대부분이 겉으론 개신교 신자이면서도 집안에선 조상신 ‘?르와르’를 섬긴다는 것.
전 교수는 파푸아의 ‘?르와르’ 신앙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서양의 인류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싱크리티즘(syncretism·혼합주의)’으로 설명해왔지만, ?르와르는 누에고치와 같은 현상으로 새롭게 설명해야 합니다. 누에(원주민의 전통문화)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고치(개신교)라는 보호막으로 꽁꽁 둘러싼 거죠.”
전 교수는 “1년의 절반은 답사지에서 보내는데 동료 인류학자들을 둘러봐도 우리 부부처럼 함께 다니는 커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씨는 “내가 역마살이 있는지 돌아다니길 좋아하는데 인류학자 남편을 만났으니 천생연분인가 보다”라고 했다. 부부의 역마살을 빼닮았는지 둘째아들과 며느리는 직장을 그만두고 함께 2년 일정의 세계일주를 떠났다. 전 교수 부부는 또 올여름 필리핀으로 답사를 떠난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