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감독님,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2009년 1월, 삼성 배영수는 괌 1차 전지훈련 출발 직전 당시 사령탑이던 선동열 감독에게 면담을 신청한 뒤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동료들은 해외로 가는데, 그는 차를 몰고 강원도 정동진으로 달렸다. ‘이젠 끝내자. 그만하자.’ 2년 전,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다시 마운드에 섰지만, 아무리 세게 던져도 구속이 130km대에 머물렀다. 누군가는 ‘아리랑볼’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똥볼’이라고 했다. 누군가는 ‘배영수는 끝났다’고 했다. 시속 150km를 우습게 던지던 그로선 참을 수 없는 고통. 그는 정동진 바닷가에서 그렇게 홀로 야구와 이별식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들려오는 한마디. “아이고, 배영수 선수 아닙니까. 제가 배영수 선수 팬입니다. 올 시즌도 잘 부탁드립니다.” 추운 겨울날 바닷가, 한 남자는 자신을 향해 해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외딴 곳에 자신의 팬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곧바로 차를 돌렸다. 대구로 향했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자신을 응원해준 팬의 말 한마디에 그는 가방을 싸서 오키나와 2차 전지훈련에 합류했다.
#2. LG 권용관은 2010년 7월 28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트레이드를 통해 SK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SK에서 뛸 기회는 더 줄어들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이 물었다. “아빠, SK에선 왜 1군 경기에 안 뛰어?” 권용관은 할 말이 없었다. “아빠가 부족해서 그래.” 지난 시즌이 끝난 뒤 SK에서 방출 통보를 받았다. 1976년생으로 어느덧 37세. 야구를 그만두겠노라고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도 흔쾌히 동의할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말을 했다. “지금 그만두면 후회하지 않을까? 은퇴는 언제든 선택할 수 있어. 당신이 후회하지 않을 때 그만뒀으면 좋겠어.” 그는 아내의 한마디에 다시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2군에서 끝내는 것보다 1군에서 뛰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한번이라도 보여주고 끝내자.’ 친정팀 LG를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3. 롯데 조성환은 햄스트링 부상으로 요즘 2군에 내려가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이 같은 말을 남겼다. “아들 녀석이 ‘공부보다 중요한 게 뭐가 있어요’라는 질문을 하네요. 꿈, 목표, 도전, 사랑 등등 소소하게 얘기 나누고 나니 많은 것들이 느껴지네요. 오늘도 나의 꿈과 목표를 향해 도전하며 하루를 채워가렵니다. 아들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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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물폭탄 승리 세리머니’로 인해 야구계는 시끄러웠다. 그보다 인터넷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타고 넘나드는 한마디, 한마디에 당사자는 당사자대로, 팬들은 팬들대로 마음에 더 큰 생채기가 났다.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꿈과 희망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비수처럼 누군가의 가슴에 박히기도 한다. 오늘 무심코 던진 나의 한마디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갈까.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