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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충남]하늘나라서 이룬 시인 등단의 꿈

입력 | 2013-06-04 03:00:00

시를 사랑했던 한남대 교직원 김성호씨 13년간의 혹독한 간암 투병 시로 승화
열정에 감동한 동료들 문학사랑에 투고… 40년 고대하던 신인작품상 받았지만 시상식 앞두고 안타깝게 5월 작고




김성호 씨(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자신이 1989년 창단한 한남대 찬양선교단인 ‘스데반’ 단원들과 함께 개교기념행사에 참석한 뒤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한남대 제공

충청권 문학동인지인 ‘문학사랑’의 신인작품상 시상식이 8일 대전 한남대 56주년 기념관에서 열린다. 그러나 이날 시(詩) 부문 수상자 김성호 씨는 참석할 수 없다. 평생 고대해 왔던 등단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지난달 8일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향년 57세.

김 씨는 한남대 총무인사팀과 시설관리팀 등에서 28년간 근무해 온 교직원이었다. 교직 생활을 하는 가운데 시를 쓰는 건 큰 기쁨이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시 쓰기를 즐기는 문학청년이었다. 그러나 2000년 그의 운명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건강검진에서 간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병세는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씨는 시에 대한 열정은 잃지 않았다. 간 이식 수술과 수차례의 항암치료로 몸은 쇠약해졌지만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명예퇴직한 뒤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수차례 넘겼지만 극심한 고통과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시로 승화시켰다.

이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동료 교직원들은 그가 시인의 꿈을 이루도록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올해 3월에는 김 씨의 시를 ‘문학사랑’에 투고했고 이 가운데 5편의 시가 ‘제86회 신인작품상’에 선정됐다.

김 씨는 수상자 선정 소식을 듣고 한없이 기뻐했다. 세상의 고통을 잠시 접고 모두에게 감사하는 당선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시를 쓰기 시작한 지 꼭 40년 만에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말기 암 환자로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고 있는 나에게 끝없는 격려를 보내준 아내와 아이들, 병원 선생님들, 문학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문학사랑은 김 씨의 상장을 유족에게 보내주기로 했다. 김 씨의 생전 소감문과 심사평, 수상한 유작시 5편은 ‘문학사랑 2013년 여름호(통권 104호)’에 실렸다.

시 ‘혼자 가는 길’은 그가 투병의 고통을 시로 승화하고자 했던 그의 창작 열정을 보여 준다. ‘문을 열자 어둠이 파도처럼 쓸려 나온다/손을 휘휘 저어 보아도 걸리는 손금 하나 없다/이쯤이면 눈에 익을 만도 한데/아무리 눈을 부비어 봐도 어둠은 이미 폐에 가득 찼다/쏟아져 내리는 하늘/ 바람 한 조각에도 나의 몸은 풍랑 속 조각배처럼 뒤집어진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