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준 산업부 차장
잠시 탐색전을 벌이던 박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고 했지만 아직 불안감이 많다”며 포문을 열었다.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이 지연되는 건 정부의 기업관에 대한 믿음이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총선 때 민생현장을 다니면서 ‘대통령의 기업관이 문제’라고 연설할 때마다 박수 소리가 커지더군요.”
이 부총리가 “대통령의 시장주의 경제 철학과 원칙은 확고하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맞섰지만 박 대표는 “환경과 관련된 것 등 최소한만 남기고 나머지 규제는 혁파해야 한다”며 다그쳤다. 결국 두 손 든 이 부총리는 “정말 덥군요”라며 황망히 자리를 떴다.
자연스럽게 국회가 경제민주화 드라이브의 주도권을 쥐게 됐다. 이번 19대 국회 들어 발의된 의원 입법이 벌써 5000건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에는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큰 부담을 주는 것들도 상당수다.
동아일보는 유례없는 8개 분기 연속 0%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로 20일부터 ‘한국 기업에 다시 날개를’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기사를 연재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기업인들은 경제민주화 입법, 과도한 규제, 내수(內需) 부진, 글로벌 경기침체 등 메가톤급 악재들로 힘들다고 했다. 대부분 예상할 수 있는 것들이었지만 의외의 어려움을 털어놓는 이도 적지 않았다. 바로 대통령의 기업관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서운해할지도 모르겠다. 중소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고 대기업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를 풀기 위해 1일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어 공공기관이 보유한 땅을 공장 증설을 원하는 기업에 제공하는 ‘당근’을 내놓았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대통령의 분명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으려면 보다 근본적인 규제완화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규제완화는 돈 들이지 않고 기업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말했다. 물론 돈은 안 든다. 하지만 용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규제는 존치(存置)를 원하는 쪽이 있게 마련이고, 이들은 조금이라도 현상유지가 흔들릴라치면 기를 쓰고 막으려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는 서울과 인천, 경기 지역의 개발을 억제하는 수도권정비계획법 시행령 일부를 개정하기 위해 입법예고까지 했지만 지역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운 비(非)수도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최근 접고 말았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