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인세계 ‘시가 된 그곳’ 특집… 12명이 쓴 시와 탄생 공간 전해
문인수 시인이 자주 찾았다는 강원 정선의 한 산골마을. 새벽을 여는 첫차엔 누가 몸을 싣고 있을까. 정선=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처음 길이어서 길이 어둡다
노룻재 넛재 싸릿재 쇄재 넘으며
굽이굽이 막힐 듯 막힐 것 같은
길
끝에
길이 나와서 또 길을 땡긴다
내 마음 속으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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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올라나 눈이 오겠다.
(문인수의 시 ‘정선 가는 길’ 전문) 》
계간 시인세계는 최근 펴낸 여름호에 ‘시가 된 그곳’이라는 기획특집을 실었다. 시인에게 각별하게 다가온 장소, 그 속에서 피어낸 시를 소개했다. 문인수 곽효환 황학주 유홍준 나희덕을 비롯한 시인 12명이 ‘시를 만난 공간’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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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48)은 미당 서정주가 스물세 살 때인 1937년 몇 달 머물렀던 제주 남단 지귀도를 찾아가 청년 미당이 보았던 절망을 읽었고, 시 ‘공중의 인터뷰’를 쓴다. 다음은 시의 일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지귀에 갔네/절망도 벌떡 일어나 걸어야 할 것 같은 적막 속으로//이글거리는 갈대숲 너머는/동지나해구나 태평양이구나, ‘한바다의 정신병’이구나.’
나희덕(47)은 전남 순천시 와온해변을 꼽았다. 와온의 일몰에서 “뜨거운 성애 장면을 보았다”고 하는 시인은 시 ‘와온에서’를 얻었다. ‘산이 가랑이 사이로 해를 밀어넣을 때,/어두워진 바다가 잦아들면서/지는 해를 품을 때,/종일 달구어진 검은 뻘흙이/해를 깊이 안아 허방처럼 빛나는 순간을 가질 때…와온 사람들아,/저 해를 오늘은 내가 훔쳐간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