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안에 별도 건물 지어 국공립어린이집에 20년간 공짜로 빌려줬더니…‘입주자 자녀 우선 배정’ 혜택으로 젊은 부부 몰리고, 아파트값 2000만∼3000만원 껑충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래미안 휴레스트’ 아파트 단지 안에 설립된 시립성사어린이집은 원생의 80% 이상이 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 시립어린이집은 입주를 앞둔 2009년 말 재개발조합과 삼성물산이 고양시에 요청해 이듬해 들어섰다. 당초 키즈카페로 쓰려 했던 1층짜리 건물(연면적 178m²)을 입주자 절반 이상의 동의를 받아 고양시에 20년간 무상으로 빌려줬다. 그 대신 고양시는 동일 순위 내에서 입주자에게 어린이집 정원의 50%를 우선 배정한다는 혜택을 줬다.
처음엔 20년 무상임대 부담 때문에 반대하는 입주자도 있었다. 지금은 젊은층이 몰려들면서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아파트보다 집값이 2000만∼3000만 원 높다. 이지연 시립성사어린이집 원장은 “현재 만 1∼3세 원아 38명 가운데 입주자 자녀가 80%를 넘는다”며 “단지 내 놀이터 체육공원 생태천이 모두 아이들 야외활동 장소”라고 귀띔했다.
○ “140억 들여 구립어린이집 설치”
지금까지 전국 대다수 아파트에는 국공립 대신 민간에 임대를 줘 운영하는 사립어린이집이 들어서 있다. 서울 시내 440개 임대아파트 단지 가운데 국공립어린이집이 설치된 곳은 56개에 불과하다. 고양시는 전체 32개 시립어린이집 중 민간 아파트에 설립된 곳이 4개뿐이다.
최근 이런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보육의 편의성이 거주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으면서 단지 내 국공립어린이집을 설립하는 아파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SK건설이 경기 화성시 반월동에 짓는 ‘신동탄 SK뷰 파크’에는 130명 정원의 시립어린이집이 설립된다. 이 일대가 수도권의 다른 지역보다 영유아 자녀를 둔 젊은층이 월등히 많다는 점에 착안해 건설사가 먼저 시에 제안했다. 단지 내에 연면적 820m²인 2층짜리 건물을 지어 시에 20년간 무상 임대하기로 한 것. SK건설은 앞으로 분양하는 대단지 아파트에도 국공립어린이집 설립을 검토하고 있다.
○ “관련 제도 뒷받침 시급”
이 같은 변화는 건설사와 입주자, 지자체의 삼박자 수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장원종 SK건설 주택사업2팀 부장은 “입주자는 집 가까이에서 질 높은 무상교육을 누릴 수 있고, 건설사는 주택시장 침체기에 젊은층 수요를 끌어들여 분양률을 조금이라도 더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국공립어린이집을 직접 운영하는 지자체로서는 적은 비용으로 어린이집을 늘릴 수 있다는 게 이점이다.
▼ “건설사-입주자-지자체 모두 윈·윈·윈” ▼
현재 국회에 300채 이상 공동주택에 국공립어린이집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도 올라와 있지만 입주민 재산권 침해 문제가 지적돼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창민 한국주택협회 회장은 “아파트에 국공립어린이집을 늘려 육아 부담을 덜어주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다”며 “국공립어린이집을 설치하는 건설사에 세제 혜택을 주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 정부에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경석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입주자 재산권 침해 문제는 아파트 용적률에서 어린이집 면적을 빼주는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이와 관련한 영유아보육법을 신설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