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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경의 ‘100세 시대’]황혼이혼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입력 | 2013-05-02 03:00:00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

예순이 되던 해 ‘황혼이혼’을 하기로 합의했을 때 아내 G 씨는 날아갈 듯이 행복했다. 그녀에게 이혼이란 온갖 신경질을 부리면서 폭언을 일삼는 남편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G 씨는 남편이 퇴직하기 직전에 결단을 내리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신의 생활비는 남편의 공무원연금과 자신이 가입해 둔 국민연금으로 해결한다는 계획도 세워 두었다.

하지만 이혼 후 G 씨의 행복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장 충격을 받은 건 남편의 공무원연금에 대한 수급권을 전혀 행사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G 씨는 이혼한 배우자에게도 지급되는 국민연금처럼 공무원연금도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이혼과 동시에 배우자의 수급권이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것이었다.

결국 G 씨는 남편이 받는 300만 원이 넘는 공무원연금에 대해서는 자신의 권리를 한 푼도 주장할 수 없었고, 자신의 이름으로 가입해둔 국민연금에서 나오는 50여만 원으로 생활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공무원연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2011년 8월 퇴직한 공무원에 대해 이혼한 전처에게 연금의 40% 정도를 분할하라는 서울가정법원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후 비슷한 판례가 늘고 있으므로 G 씨도 민사소송을 통해 연금의 일부를 지급받을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소송에서 이긴다 해도 남편이 연금을 주지 않겠다고 버틸 경우 형사처벌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변호사 비용도 부담스러웠다. 더 심각한 건 자식들의 반대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혼을 감행한 G 씨를 비난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연금 때문에 부모가 소송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돈 문제보다 G 씨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건 이혼에 대한 자식들의 반응이었다. G 씨는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타지에서 공부했고, 모두 취업해 독립할 정도로 성장했으므로 부모의 이혼을 ‘쿨’하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인 자신의 편을 들어줄 거라는 기대도 내심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에 큰 충격을 받은 듯했고, 오히려 이혼을 제기한 어머니 G 씨를 원망했다.

아들은 “아빠가 엄마를 때린 것도 아니고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닌데 왜 이혼을 당해야 하느냐”며 따졌고, 딸은 딸대로 “엄마도 문제예요. 아빠가 자기중심적이어서 엄마에게 잘못한 건 사실이지만, 엄마가 평소에 이혼할 수도 있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면 달라졌을 것”이라면서 G 씨를 비난했다.

G 씨는 지금 모든 게 혼란스럽다. 돈도 없고 일할 능력도 없는 주제에 덜컥 이혼을 해버린 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자꾸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불행이 남편 탓이라고만 여겼는데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에 괴롭다는 것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2012년 전국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혼인 지속기간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 건수 비율이 전체 이혼의 26.4%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건 결혼한 지 30년 이상 된 부부의 이혼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혼인 30년 이상 부부의 2012년 이혼 건수는 8600건으로 10년 전에 비하면 2.4배, 1년 전보다 8.8%나 증가했다. 반면 결혼 후 4년 이내에 이혼한 비율은 24.7%로 전년에 비해 8.1% 감소했다. 2010년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추월했던 서울시에 이어, 2012년에는 전국적으로 황혼이혼이 신혼이혼을 추월했다.

황혼이혼이라는 단어가 처음 쓰였을 때만 해도 이혼 사유는 주로 남편의 폭력이나 외도 같은 것이어서 “그 나이에… 참고 사시라”는 말을 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 제기되는 황혼이혼의 사유는 어느 일방의 탓으로 돌리기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해졌다. 앞으로는 더욱 그럴 것이다. 인생의 후반기라고 해서 불행한 결혼을 계속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혼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이혼 후의 심리적 스트레스나 고독감, 자녀와의 갈등 문제는 남녀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러나 이혼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이나 상대적 빈곤감은 여자들에게 특히 불리하다. 기혼인 친구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등 사회적 관계망도 변한다.

여기에 황혼이혼이 손해라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건 G 씨의 경우에서 보았듯 공적연금제도다. 이혼한 배우자에 대한 수급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제도는 말할 것도 없다. 배우자의 수급권을 인정하는 국민연금의 경우도 이혼하면 손해다. 이혼할 경우에는, 함께 살아도 부족한 연금액(2013년 4월 현재 국민연금 최고액 수령자가 받는 돈은 143만5970원)으로 생활비를 따로따로 감당해야 한다. 분할 연금에는 배우자수당이 제외되고,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배우자의 원연금액이 원수급자인 남편 혹은 아내에게 합산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혼 후 홀로 고독하게 살다보면 기대여명도 단축돼 연금 받는 기간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의 공적연금제도는 황혼이혼을 억제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씁쓸한 위안’이라도 해야 할까.

어떻든, 황혼이혼을 고민한다면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다.

한혜경 호남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