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상구’ 이상우 감독의 괴짜 인생
‘비상구’ ‘엄마는 창녀다’ 등 자신이 연출한 영화에 배우로도 출연한 이상우 감독. 카메라 앞에 서자 장난스러운 얼굴 표정을 순식간에 심각하게 바꿨다. 그는 “이게 악마의 얼굴”이라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체모는 이 영화를 풀어가는 중요한 모티브죠. 하지만 여배우에게 진짜 깎으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영화에서는 깎는 시늉만 하고, 미리 깎아둔 제 체모를 썼어요. 미술부에서 진짜가 아니면 티가 난다고 해 어쩔 수 없었어요. 요즘 목욕탕 못 가요.”
이 영화는 전주영화제가 실험성 있는 작품을 지원하는 ‘숏숏숏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956만 원을 받아 만든 영화에는 배고픈 배우들이 출연했다. “남자 주인공을 연기한 배우 한주완은 서울 남대문시장에 시간당 1만 원을 받고 커피 배달을 해요. 7, 8년 동안 일을 했는데,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하네요.”
광고 로드중
그는 고교시절 영화에 미친 학생이었다. 서울 충무로와 을지로의 극장들을 다니며 모은 영화 전단지가 수천 장에 이른다. “친구도 없었어요. 오로지 영화관만 다녔으니까요. 4수를 했는데 결국 대학을 못 갔어요. 군 제대 후 모은 돈을 들고 미국으로 갔어요. 어렵게 공부해 1999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영화과에 들어갔죠.”
영화로 이름 높은 학교에 입학했지만 인생은 또 다른 시련을 맞았다. “공중전화로 서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순간 전화 부스에 설치된 폭탄이 터졌어요. 정신을 차리고 깨어보니 병원이었죠. 사고 이후 생긴 이명 때문에 밤마다 잠을 잘 못자요.” 그는 이 사고로 한쪽 눈과 귀를 잃었다. 영상을 다루는 영화감독에게는 치명적인 핸디캡이다. 한쪽 눈은 의안으로 채웠다.
2003년 입국해 여러 프로젝트를 들고 영화사를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투자를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렵게 만든 영화가 데뷔작인 ‘트로피컬 마닐라’(2008년)였다. 이 영화는 극단적인 폭력과 외설적인 장면 때문에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았지만 로테르담, 밴쿠버 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저에게 ‘왜 이렇게 논란을 일으키는 영화를 만드느냐’고 많이 물어요. 하지만 이게 영화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입니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다녀도 투자 받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서 무조건 ‘세게’ 찍자고 생각했어요. 그럼 사람들이 봅니다. 영화제가 좋아하는 쪽으로, 영화제용 영화를 찍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광고 로드중
‘아버지는 개다’는 한때 바람을 피운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만들었다. 아버지는 지금 말기 암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지금은 아버지와 하루 스무 번 이상 통화해요. 아버지가 이렇게 좋은 사람인 줄 몰랐어요. 아버지만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최근엔 난생처음 목욕탕에 함께 갔어요. 밀기 전에….”
인생이 영화고, 영화가 인생인 그는 “요즘 영화 지망생들이 돈이 없어 작품을 못 찍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라고 했다. 열정만 있으면 영화의 길은 얼마든지 있다고도 했다. “50만 원이면 아이폰으로 찍을 수 있어요. 그렇게 찍어도 콘텐츠만 좋으면 영화제에 갑니다. 영화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건 용기뿐입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