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회원도 탐사 다녀오면 과학책 쓸 정도
박문호 박사가 서호주 사막 필바라 지역의 노천 철광산에서 19억∼26억 년 전에 생성된 철광층을 탐사하고 있다. 그는 “지구상에서 최초로 산소를 만들어낸 원시 박테리아의 활동 덕분에 바닷물 속에 침전된 산화철이 쌓이면서 수백 m 두께의 철광층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 제공
2년 전 여름 호주 사막으로 과학탐사를 떠났던 박문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책임연구원은 “황량한 사막 위로 쏟아지는 별빛 아래 섰을 때 비로소 우주 행성 시스템에 속해 있는 우주인임을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여름 서호주 사막, 몽골 초원, 미국 네바다 주 사막 등지로 학술탐사를 떠난다. 40, 50대 직장인, 주부, 대학생을 포함한 약 25명의 탐사대원이 동행한다. 과학문화운동단체 ‘박문호의 자연과학세상(박자세)’ 회원들이다. 5년 전부터 박 박사가 매주 진행하는 ‘137억 년 우주의 진화’와 ‘뇌과학’ 강의를 들은 이들의 모임으로 회원 수는 약 2000명이다.
“탐사를 다녀온 회원들이 스스로 과학 전문가가 되는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실크로드, 아프리카, 남미까지 지구 진화와 인류의 이동 경로를 탐사한 학술서적을 20권 정도 출간할 계획입니다.”
박 박사가 이끄는 해외 탐사에는 전문가가 동행하지 않는다. 그 대신 탐사대원 전원이 전문가가 되기 위해 공부한다. “탐사 전엔 국내 지질박물관을 방문해요. 일반 주부라도 암석의 종류를 모두 알 수 있을 정도로 암석학을 외우고 공부합니다. 탐사 기간엔 일절 술을 마시지 못해요. 하루 종일 탐사하고 밤에는 텐트 속에서 파워포인트를 활용해 졸면서 공부를 해요.”
몽골을 탐사할 때 회원들은 700쪽이 넘는 연구 자료를 만들었다. 공항 로비는 물론이고 고비 사막까지 7∼8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몽골의 역사, 종교, 지질, 천문학 강의를 진행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을 찾는 이유는 지구 행성의 초기 모습을 탐구하기 위한 것입니다. 문명으로 오염되기 전 원초적 자연을 만나는 것이죠.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자칫 영적인 차원으로 빠질 수가 있어요. 이를 막기 위해 대학교재로 사용되는 검증된 교과서만 가지고 공부합니다. 일상적인 대화도 금지하고요.”
그는 “자연과학 강의는 백 마디 철학적, 인문학적 해석보다 수학을 이용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일반상대성이론 강의에는 미적분 기호가 무수히 등장하는데 그는 모든 수식을 칠판에 써가면서 강의하고 회원들에게는 모두 암기하도록 요구한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본 사람이 국내에만 10만 명쯤 될 겁니다. 그런데 과학을 공부하는 인구는 왜 마라톤 인구보다 적을까요. 마라톤 풀코스가 42.195km가 아니고 10km였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도전하지 않았을 겁니다. ‘쉽게 쓰는 과학’ ‘실용적인 과학’만으로는 과학이 대중화될 수 없어요. 대중의 과학운동을 노벨상 수준으로 높일 때 과학 공부에 미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겁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