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박스/로먼 크르즈나릭 지음/강혜정 옮김/528쪽·2만 원/원더박스
18세기 프랑수아 제라르의 작품 ‘프시케와 에로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연인 프시케와 에로스의 낭만적 사랑을 표현했다. 주로 이성 간의 낭만적 사랑에 집착하는 오늘날과 달리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랑을 6가지로 구분해 다양한 관계에서 만족을 얻었다. 동아일보DB
영국에서 활동하는 문화사학자인 저자는 올해 초 국내에 출간된 ‘인생학교’ 시리즈 중 ‘일: 일에서 충만함을 찾는 법’을 쓰기도 했다. 전작에 이어 신작도 무릎을 칠 만큼 놀라운 혜안이나 해결책을 담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삶에서 부닥치는 고민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성찰해 보게끔 한다. 더불어 풍부한 글감은 저자가 다방면을 아우르며 얼마나 지독하게 독서를 했는지 고스란히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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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현대인은 사랑에 대한 모든 욕구를 한방에 충족시켜 줄 한 사람을 찾으려 하고, 주로 이성 간의 낭만적 사랑에 집중한다”며 “고대 그리스인처럼 6가지 사랑이 공존하는 생활을 하면 애정 결핍에서 벗어나 우리네 삶에 생각보다 사랑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고 말한다.
자녀 양육과 집안일이 여자 몫이고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남자 몫이라는 관념이 근대에 들어와서야 퍼진 이데올로기라는 주장도 흥미롭다. 그 전에는 남녀 사이의 가사 분담이 지금보다 훨씬 평등해서 가사는 주부(主婦)가 아닌 주부(主夫)의 몫이었다는 것. 산업혁명 이전에 유럽과 식민지 북미에서 경제활동은 주로 집을 중심으로 이뤄졌고, 19세기에 공장이 생겨 남자들이 일하러 나가면서부터 남녀 역할에 고정관념이 생겼다고 한다. 저자는 “아기를 낳을 자궁과 젖을 먹일 유방을 가진 이는 여자이지만, 젖병을 소독하고 셔츠를 다리고 으깬 완두콩 요리를 하는 데는 특별히 여성유전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못 박는다.
콩스탕탱 브랑쿠시의 조각 ‘키스’는 낭만적 사랑의 맹점을 보여준다. 입 맞추며 포옹하는 연인은 숨 쉴 공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관계 안에 갇혀 독립성을 잃고 세상에도 등을 돌렸다. 원더박스 제공
책 제목 ‘원더박스(Wonder Box)’는 독일의 수집가들이 여기저기서 모은 매혹적이고 진기한 물건들을 전시하는 공간이던 분더카머(Wunderkammer)에서 따왔다. 역사라는 원더박스를 들여다보고 배우자는 뜻. 괴테도 똑똑히 말했다. “지난 3000년 역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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