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 못말리는 등산복 사랑 왜?… 소비자 1000명 심리조사
코오롱스포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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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아웃도어 시장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급성장을 거듭해 지난해에는 5조7000억 원 규모로 커졌다. 소비 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성장세다. 아웃도어 열풍의 근본적 원인을 찾기 위해 동아일보는 ‘한국인의 아웃도어 의류 소비 심리’를 조사해 봤다. 여준상 동국대 교수와 대홍기획이 콘텐츠 기획에 참여했으며 엠브레인이 18∼22일 전국의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웃도어 의류가 자신을 젊고 활동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청춘의 날개옷’으로 여기는 것이다.
‘등산복 등 아웃도어 의류를 입으면 자신이 더 젊어 보인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40대의 38.5%와 50대의 36.3%가 ‘그렇다’ 또는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했다. ‘젊어 보이지 않는다’는 응답은 그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주부 김숙애 씨(60)는 “몸의 라인을 살려주는 디자인과 화사한 색상 때문에 아웃도어 의류를 입으면 날씬하고 젊어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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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의류를 입으면 자신이 더 활동적으로 보인다는 응답도 44.7%였다. 연령대별로는 40대의 긍정 응답률(50.4%)이 가장 높았다. 성별로 보면 여성(47.6%)이 남성(41.8%)보다 다소 높았다. ‘고가의 아웃도어 의류를 입으면 자신감이 생긴다’는 문항에 대해선 40%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 편하지만 비싼 옷
조사 대상자들은 편하고(86.4%, 복수 응답), 기능성이 뛰어나서(63.5%, 〃) 아웃도어 의류를 입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아웃도어 의류를 트레이닝복처럼 ‘편하게 막 입는 옷’으로 여기는 것은 아니었다. 아웃도어 의류의 브랜드가 중요하다는 응답비율은 58.3%로 절반이 넘었다. 의류 가운데 브랜드에 대한 고려 정도가 가장 높은 정장(66.5%)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상당히 높은 수치다. ‘브랜드가 중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10%도 채 안 됐다.
일주일에 세 번 산에 오른다는 박용욱 씨(56·자영업)는 “유명 브랜드를 입으면 주변에서 나를 흘금흘금 쳐다보는 느낌이 든다.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등산복을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패션감각이 있구나. 나이를 먹었어도 옷을 깔끔하게 입는구나’ 하는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등산할 때 아웃도어 의류를 제대로 갖춰 입으려고 한다”고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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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아웃도어 의류를 살 때 가격에 신경을 덜 쓰게 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아웃도어 의류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가격’이라는 응답은 19.0%로 ‘소재의 기능성’(45.6%)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일반적으로 의류와 관련한 조사에선 가격이 중요하다는 응답률이 가장 높게 나온다. 아웃도어 의류에 한해선 ‘기능만 뛰어나다면 비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 아웃도어 의류를 구입할 때 한 번에 10만∼30만 원을 쓴다는 응답이 60%에 육박했으며, 30만∼50만 원이라는 응답도 20% 가까이 됐다.
아웃도어 의류는 이미 ‘국민 복장’이 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웃도어 의류를 사지 않는 사람은 전체의 9.5%에 불과했다. 40대와 50대 남성은 쉬는 날 외출복으로도 아웃도어 의류를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연령에서 휴일에 아웃도어 의류를 입는 사람은 22.0%였지만 40대 남성은 40.0%, 50대 남성은 43.2%였다.
○ 젊게 오래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
전문가들은 실용성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성향과 고령화 추세, 최근의 경제 상황 등이 맞물려 아웃도어 열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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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금융위기 이후 조기 은퇴 문제 등으로 불안감이 커진 중년층이 아웃도어 활동을 추구하게 됐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외환위기 직후처럼 할 일이 없어진 사람이 늘면서 산을 찾게 됐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유난히 동질성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직장인 서정민 씨(31·여)는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그 무리에 낄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된다”며 “요즘엔 아웃도어가 대세인 듯하다”고 말했다.
아웃도어 열풍에 대해 ‘산에 가지도 않으면서 등산복을 입는다’라거나 ‘동네 뒷산에 가면서 히말라야에 오르는 것처럼 옷을 입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준상 교수는 “아웃도어 열풍 이면에는 의류산업의 패러다임 변화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며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이 참호 안에서 입었던 ‘트렌치코트’가 전후 패션 아이템이 된 것처럼 앞으로 모든 의류가 기능성, 실용성 위주로 바뀔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문권모·권기범 기자 mikemoon@donga.com
▼ 개성 강한 사람일수록 아웃도어 구매 더 활발 ▼
이번 조사에서 ‘등산복 구매 때 브랜드가 매우 중요하다’고 대답한 사람의 외로운 정도를 측정한 결과는 5점 만점에 3.04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평소 얼마나 외로운 기분을 자주 느끼는지를 숫자로 환산한 결과다. 수치가 5에 가까울수록 외로움의 정도가 심한 것으로 본다.
반면 ‘등산복 브랜드가 매우 중요하지 않다’고 답한 사람의 외로움 수치(1.8)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등산복의 브랜드를 중시하지 않는 사람들은 외로움도 덜 느낀다는 뜻이다.
권력을 추구하고 경쟁심이 강하며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등산복 브랜드에 대한 의존도가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등산복 브랜드를 매우 따진다’고 응답한 사람들은 평소 힘 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3.55)이 강했다. 남보다 잘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정도와 남들에게 빈틈을 보이기 싫어하는 정도도 각각 3.88, 3.85로 높았다.
‘중소기업이 만든 등산복을 착용하면 창피한가’라는 질문에 ‘매우 그렇다’라고 답한 사람은 힘 있는 자리에 올라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4.14)가 높았다. 권력을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고가의 아웃도어 의류는 자신감, 저가의 중소기업 브랜드는 창피함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다.
개성이 강한 사람들은 아웃도어 의류 구매 활동도 활발했다. ‘아웃도어를 2주에 한 번 구매한다’고 응답한 사람 중에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살고 싶은 정도가 높게(3.77) 나타났다.
한양대 홍성태 교수(경영학)는 “외로울수록 등산복 브랜드를 따지는 것은 심리적 결핍을 채우기 위해 명품 백을 사는 것과 비슷하다”고 해석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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