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굴곡 많은 거대한 현대사를 껴안은 듯한 박근혜의 극적인 삶 때문에 많은 지지자는 그가 대통령이 되는 게 마치 운명인 것처럼 믿었다. ‘고귀한 신분의 주인공이 갑자기 밀어닥친 온갖 역경을 딛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완벽한 영웅 신화가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의 당선으로 완성된 것이다.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는 ‘보통 사람’을 내세웠지만 역대 대통령 중 정말 평범한 사람은 없었다. 고려 시대 노비 만적은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부르짖었고 신분제는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21세기의 우리 국민은 ‘그래도 대통령감은 따로 있다’고 믿는 듯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목숨을 건 결단과 승부다. 정치적 생명뿐 아니라 말 그대로 목숨을 건 경우도 있었다. 박정희는 1961년 5월 16일 새벽 총탄이 쏟아지는 한강 다리를 건넜다. 군 후배 전두환도 ‘성공한 쿠데타’로 규정된 12·12와 5·17을 딛고 권력을 손에 쥐었다. 거사를 함께한 그의 친구 노태우는 6·29선언이라는 승부수를 던져 직선제 대선에서 승리했다.
23일 동안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며 군사정권에 대항했던 김영삼(YS)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군정세력과 손을 잡고 결국 청와대의 주인이 됐다.
이들은 끊임없이 저항하고 도전하며 자기 길을 걸어갔다. 김대중(DJ)은 납치를 당하고,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으면서도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다. 인권변호사로서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우던 노무현은 정치 입문 후에도 지역주의와 싸운다며 ‘질 것이 뻔한 선거’에 끈질기게 도전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때로는 눈을 질근 감고 온갖 비난과 정치적 비루함을 참아내기도 했다. 군 출신들은 총칼로 권력을 잡았다. DJ는 비판을 무릅쓰고 정계은퇴를 번복했고, ‘유신 본당’을 자처한 김종필(JP)과 손을 잡았다. YS는 각서까지 쓴 내각제 약속도 휴지조각처럼 버렸다.
이쯤 되면 ‘대통령 운명론’까지는 아니어도 적어도 ‘대통령 DNA(유전자)’ 정도는 따로 있는 것 아닐까. 물론 DNA도 운명처럼 바꾸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안철수가 지난 대선에서 중도하차하는 바람에 국민들은 그의 깜냥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 그는 화려한 성공스토리는 있지만 ‘대통령감’으로 자신을 각인시킬 만한 정치적 결단을 보여준 적은 없다.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을 냈지만 정치적 승부에선 밀렸다. 영화 ‘링컨’을 보고 감명 받았다지만 정치의 흙탕물에 성큼 발 담글 각오가 있는지도 더 지켜봐야 한다. 그는 이제 자신의 대통령 DNA를 스스로 증명해보여야 한다.
김기현 채널A 정치부 차장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