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윤리상 재무설계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특정 상품을 판매했을 때 재무설계사가 보너스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설계사는 편향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고객 피해를 막기 위해 이해관계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이 있을 경우 이를 알리도록 제도화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해상충 사실을 알린다고 해서 고객이 재무설계사의 권유를 쉽게 뿌리칠 수 있을까.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고객에게 조언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신이 X를 선택하면 나는 이익을 얻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이 조언을 따르면 제가 한 건 올리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오늘도 헛수고하는 것이죠”라는 말을 완곡하게 바꾼 것에 불과하다. 대놓고 나를 도와 달라고 얘기하면 실제 도와줄 확률이 높아진다는 ‘구걸효과(panhandler effect)’가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은 대도시에서 행인을 모아 구걸효과를 검증했다. 실험 참가자에게 조언을 주고받는 상황을 만든 뒤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하거나 감췄고 고객의 수용 여부도 지켜봤다. 참가자는 A형과 B형 복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조언자는 B형 복권을 권유했다. 하지만 A형 당첨 시 받을 수 있는 상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조언자는 참가자가 B형을 선택했을 때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연구팀은 구걸효과를 줄이는 방법도 제시했다. 만약 조언자가 이해상충 사실을 직접 말로 하지 않고 서면으로 하면 고객은 구걸효과로 인한 심리적 압박을 덜 받았다. 또 소비자는 조언자가 같은 자리에 없을 때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반대로 영업사원들에게는 애써 이해상충 사실을 교묘히 숨기려 하기보다는 과감하게 공개해야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시사점도 제공한다.
안도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이유종 기자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