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이 뭐길래 도시 직장인들 몰려드나
“동료들과 서로를 격려하고 때론 상대에게 자극받으며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 진정한 크로스핏의 정신입니다.” 4일 서울 중구 을지로 크로스핏 센티널 체육관에 모여든 젊은 직장인들이 수업에 집중하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도회적 분위기의 명칭과 달리 크로스핏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원시적’ 살풍경에 당황하기 일쑤다. 굳이 말하자면 복싱 영화 ‘록키4’의 주연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의 극중 훈련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스탤론은 영화에서 지극히 ‘생활 또는 자연친화적’ 으로 운동을 했다. 한적한 시골 농장 주위를 달리고 창고에서 웨이트를 들었으며, 심지어 냉동 쇠고기를 이용해 복싱기술을 연마했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피트니스는 주로 현란한 ‘장비’에 의존하는 하드웨어적인 스포츠에 가깝다.
하지만 형체를 규정하기 힘든 크로스핏은 다채로운 상황에 적응 가능한 소프트웨어 지향의 집단놀이와 비슷하다. 》
“맞아요. 그래서 미국에선 크로스핏 체육관을 흔히 ‘차고에 만든 체육관(개러지 짐·Garage Gym)’이라고도 부릅니다.”
한때 격투기를 즐기던 고성현 매니저(33·크로스핏 센티널 체육관)는 5년 전 유튜브에서 크로스핏 동영상을 접하고 그 매력에 빠져 아예 전문 트레이너로 전업했다. ‘개러지 세일’이나 ‘개러지 밴드’ 등의 문화에서 알 수 있듯 ‘개러지’ 스포츠란 실용과 창조를 즐기는 미국적 문화의 최신 버전이라고 한다. 뚝딱뚝딱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놀이공간인 차고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형식의 피트니스가 탄생했다는 것.
실제로 최근까지도 크로스핏은 일부 대도시 화이트칼라와 여피족이 즐기는 하위문화에 가까웠다. 낮에는 얌전히 지식노동자로 일하다가 밤이 되면 지하실 체육관에서 격렬한 운동을 즐기는 문화는 마니아들을 열광시켰고 세계적인 유행으로 퍼져나갔다.
그저 체력단련 기구를 ‘순례’하는 수동적 운동방식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익숙한 피트니스와 지식을 결합해 전례 없던 운동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니아들에 의해 만들어진 오늘의 운동, 즉 ‘와드(W.O.D·Work of the Day)’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크로스핏의 경우 체육관마다 운동프로그램이 다를 뿐만 아니라 그날의 운동을 시작 직전에 합의하기도 한다. 보통은 △메타볼릭 컨디셔닝(저강도 반복 달리기, 유산소 자전거 타기) △짐네스틱스(턱걸이, 점프 등의 운동) △웨이트 리프팅(벤치프레스 숄더프레스 등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운동)의 순서로 1시간 정도 뛰고 달리기를 반복한다.
▼ 그룹 함께 격렬한 운동 몰입, 강철체력의 ‘초인’으로 ▼
와드는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에 숙달된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특히 크로스핏은 복합적 신체기능을 고르게 발달시키기 위해 기구를 이용한 운동, 유산소운동, 근력운동 등 세 가지를 섞어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 만들어진 크로스핏닷컴(CrossFit.com)은 이 신종 스포츠의 ‘교과서’로 불리는 사이버 공간이다. 전 세계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와드와 그 시연 자료가 이곳을 통해 공유되고 때로는 스포츠과학과 접목돼 정교해진다.
크로스핏은 체력 증진을 목표로 하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미국의 소방관들은 크로스핏을 정식 훈련법으로 채택하는 대표적인 직군이다. 그들에게는 위급한 상황에서 사람을 들쳐 업고 뛰거나 예측할 수 없는 위기 상황을 스스로 타개하게 하는, 강력한 종합 체력이 필요하다. 사실 크로스핏은 피트니스에 대한 실용적 관점을 극대화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다.
이날 체육관에서는 ‘미녀들의 수다’에 등장해 유명해진 영국인 애나벨 앰브로스(32)가 전문 강사로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비교적 작은 체구지만 단단한 근육을 자랑하는 그는 바쁜 방송활동 중에도 틈틈이 훈련한 크로스핏으로 삶의 활력을 충전 중이었다.
각종 동호인 역도대회의 수상기록과 함께 크로스핏 대회에까지 출전한 경험을 갖고 있는 그는 “튼튼한 여자야말로 진정으로 아름다운 여자”라면서 “동료들과 함께 매일 주어지는 새로운 과제들을 따라가기만 해도 체력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며 크로스핏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영국 출신 방송인이자 크로스핏 전문강사인 애나벨 앰브로스(오른쪽)의 지도에 따라 로잉(Rowing) 운동에 몰입한 크로스핏 참가자들. 크로스핏 동호인들은 체육관 안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돈독한 우정을 쌓아간다.
크로스핏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커뮤니티 운동’이란 점이다. 동호인들은 나 홀로 기계와 투쟁하는 피트니스가 아닌, 최대 15명으로 구성된 동료들과 함께 그날에 주어진 ‘임무’를 함께 수행한다. 단체운동이지만 기록 경신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묘한 경쟁심과 유대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여러 명이 함께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처음엔 불가능해 보이던 것도 동료들의 존재로 인해 자기도 모르는 새 해내는 경우가 있다. 또 누군가의 뛰어난 기록을 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투쟁심이 생긴다. 이런 스포츠 커뮤니티는 효율적인 목표 성취를 도울 뿐만 아니라 동료가 된 이들과 체육관 밖에서도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해준다. 시간이 부족하고 의지와 체력까지 나약한 직장인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많은 스포츠 마니아가 크로스핏을 체력 단련에서 재활 치료까지 폭넓게 활용하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K1 파이터인 임수정 선수(27)는 부상 재활과 체력 단련을 위해 크로스핏 훈련을 시작했다가 이제는 크로스핏 트레이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 리복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인 울리베커는 “무릎이 아파 달릴 수도, 피트니스를 할 수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크로스핏을 접하고는 체육관에 가는 즐거움을 발견했고 매일 크로스핏 수업에 참여하더니 결국 무릎 부상을 극복하고 20kg을 감량하는 데 성공했다.
체육관에서 만난 동호인들은 “크로스핏이란 매일 새로워지는 나를 만날 수 있는 스포츠”라며 “이를 통해 삶이 보다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나른한 봄날을 맞이해 날마다 새로운 목표에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보다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집과 사무실 등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점이 크로스핏의 최대 매력이니 말이다.
:: 와드(W.O.D)란?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