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 화조화전
현재 심사정의 화첩 ‘괴석과 월계화, 나비와 두꺼비’. 화훼초충도의 대가답게 활달한 먹선의 변화와 힘찬 괴석 표현이 돋보인다. 동산방화랑 제공
서울 종로구 견지동 동산방화랑의 ‘조선후기 화조화전-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전을 통해 처음 공개되는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의 8폭 화첩이다. 산수보다 화조에 능했던 현재가 그린 꽃과 나비들, 쇠비름 벋음씀바귀 같은 풀과 온갖 벌레가 어우러진 8폭 그림이 화사한 뜨락을 연출한다. 중년 이전에 완성한 화첩으로 추정되며 욕심껏 화면을 가득 채우고 모든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현대인의 취향에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17세기 후반 창강 조속부터 20세기 초 민영익까지 화가 23명이 그린 화조화 80여 점으로 구성된다. 박주환 동산방화랑 회장과 컬렉터 6명의 소장품을 모은 자리로, 대중과 처음 만나는 작품이 70점을 헤아린다. 선인의 소담한 정원을 실내로 옮긴 듯 품격 있는 아름다움이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시는 12∼31일. 무료. 02-733-5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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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백로도첩’에 실린 ‘자라풀과 줄, 물고기 잡는 쇠백로’. 쪽물 들인 파란 종이와 대범한 필치의 수묵, 흰 호분으로 채색한 백로가 선명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동산방화랑 제공
쪽물 들인 10폭의 닥종이에 하얀 호분으로 쇠백로를 그린 겸재의 ‘백로도첩’은 독보적 존재감을 드러낸다. 파란 종이, 검은 먹, 흰 물감의 조화가 참신하고 결백을 상징하는 흰 백로의 다양한 자태는 사실적 회화성을 드러낸다. 늦봄부터 가을까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백로를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물이다. 발걸음을 옮겨 감상하노라면 고품격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하다. 이는 겸재가 절친했던 시인 사천 이병연(1671∼1751)이 어려운 시절을 보낼 때 선물한 50대 무렵의 화첩이다. 강가 언덕이나 벼랑의 표현 속엔 훗날 산수화에서 보여준 필력이 스며 있다.
단원의 10폭짜리 ‘수금·초목·충어 화첩’도 명품이다. 1748년 정월 안기찰방으로 부임한 단원이 그해 여름 안동 지역의 지방관 이의수에게 그려준 화첩이다. 드물게 보는 40대 초반 그림인 데다 단원이 서울 청계천 부근에 살았음을 암시하는 발문이 실려 있다. 소나무에 기생하는 거재수나무의 넝쿨 표현은 생동감이 넘치고 ‘내버들과 매미’에선 사선 구조의 여백을 살리면서 곤충의 두 눈과 날개까지 세밀하게 표현하는 등 탄탄한 실력이 돋보인다.
○ 생명존중 일깨운 사실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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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와 조류 전문가의 고증을 받아 이고들빼기와 털여귀, 노랑머리할미새 같은 토종 동식물의 이름을 제목에 반영한 것도 흥미롭다. ‘남나비’란 별명을 얻은 남계우(1811∼1890)의 나비를 필두로 수수꽃다리 한란 벌개미취 실거리나무 같은 토종 식물과 황조롱이 황쏘가리 같은 토종 동물까지, 생생한 우리 땅의 생물도감을 펼쳐보는 기분이 든다.
고미석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