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놀부는 백보 흑보로… 구운몽은 구운루로…
1892년 프랑스에서 ‘향기로운 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프랑스판 춘향전 원본의 속표지. 왼쪽에는 춘향이가 그네를 타는 서양 여인으로 묘사되어 있다. 김승열 씨 제공
낯선 듯 익숙한 이 이야기는 1946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중국어로 출간된 소설 ‘흑백기(黑白記)’의 일부다. 한국계 일본인 소설가 장혁주가 ‘흥부전’을 일본어로 개작해 ‘흥보와 놀보’(1942년)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것을 중국 학자 판취안(范泉)이 다시 중국어로 번역하고 삽화 10폭을 곁들여 출간한 책이다. 흥부와 놀부의 이름을 각각 선악을 상징하는 백보(白寶)와 흑보(黑寶)로 바꿨고, 일본판 ‘흥보와 놀보’에 개작된 대로 흑보가 직접 뱀으로 분장해 제비 다리를 부러뜨린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1906년 파격적으로 각색된 ‘대만판 춘향전’이 최근 대만에서 발굴되면서 일찍부터 해외로 퍼져나간 한국 고전소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고전소설은 일본에는 17세기 중반부터, 서양에는 19세기 말부터 소개되었으니 한류의 ‘원조’였던 셈이다. 이들은 주로 원작 그대로 번역되기보다는 큰 줄거리를 따르면서도 각 나라의 문화에 맞게 조금씩 각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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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전소설의 해외 진출 역사는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에서부터 시작된다. 조선 전기에 간행된 김시습(1435∼1493)의 ‘금오신화’는 1653년부터 일본으로 건너가 간행돼 지금도 일본의 목판본이 전한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에는 쌍림(雙林)이라는 중국인 통역관이 조선어 공부를 목적으로 한글소설 ‘유씨삼대록’을 갖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일본의 외교관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도 1702년 조선의 ‘숙향전’과 ‘이백경전’을 베껴 쓰며 조선어를 공부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개항 이후에는 조선에 머문 서양 선교사와 외교관이 고전소설을 서양으로 전파하는 주역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캐나다인 선교사 제임스 게일(1863∼1937)과 미국인 선교사 겸 외교관 호러스 알렌(1858∼1932)이다. 게일은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홍길동전 등을 영어로 번역했다. 알렌은 한국의 설화와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홍길동전의 일부를 발췌 번역해 1889년 미국에서 ‘한국의 이야기들(Korean Tales)’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구한말 해외에서 가장 많이 번역 또는 개작된 작품은 춘향전으로 알려졌다. 일본어(1882년) 영어(1889년) 프랑스어(1892년) 독일어(1893년) 중국어(1906년) 춘향전이 전해진다. 박현규 순천향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춘향전이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다뤄 대중에게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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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중국에서 ‘흑백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중국어판 흥부전 속의 삽화. 흑보(놀부)가 박을 타자 거인이 튀어나와 흑보를 발로 뭉개며 윽박지르고 있다. 양승민 교수 제공
김만중의 ‘구운몽’은 19세기 초 청대 중국인이 구운몽의 세 배 분량으로 늘려 개작한 ‘구운루(九雲樓)’를 출간했으며, 일본 메이지시대의 유명 여류작가 히구치 이치요(통口一葉)는 1892년 ‘구운몽’의 한문본을 필사하며 소설을 공부했다. 선교사 게일은 1922년 ‘구운몽’을 영어로 직역해 ‘The Cloud Dream of the Nine’이라는 제목으로 영국에서 출간했다.
근대 이전에 외국에서 번역 및 개작된 소설이 한국 원작의 출처를 밝혀놓은 사례는 드물다. 요즘으로 치면 표절과 저작권 문제에 휘말릴 만한 사안이지만 당시 풍토로는 관행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양승민 교수는 “오늘날 한류가 한국인들이 기획한 것이라면 구한말에는 한국 고전소설의 재미와 가치를 알아본 외국인들이 이를 자발적으로 해외에 알렸다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한류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미·정양환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