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사업장 둔 기업들… 연애사업 팔걷은 까닭은
한국서부발전은 지난해 9월 미혼 남자 직원과 공무원연금공단 소속 미혼 여직원 20쌍을 위해 단체미팅 행사를 열었다. 지방 근무로 이성과 만날 기회가 적은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이 행사에서 여섯 커플이 탄생했다. 한국서부발전 제공
지난해 11월 경북 포항시 포스코에너지 연료전지공장 회의실. 평소 같으면 연료전지 발전시스템에 대한 회의가 한창이어야 할 이 공간에서 파란색 작업복을 입은 남녀 직원 100여 명이 두 눈을 반짝이며 결혼정보업체 관계자의 강의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강의 제목은 ‘잘나가는 당신이 아직까지 혼자인 이유는?’이었다. 회사 측이 미혼 직원들을 위해 마련한 연애강의였다.
에너지기업이 연애강의까지 열게 된 것은 직원들의 강력한 요구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 이 회사 오창관 사장이 사원들과의 대화 시간에 “회사에 건의사항이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하자 젊은 직원들은 “사내 복지 차원에서 결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읍소했다. 포스코에너지 사업장은 인천과 경북 포항시, 전남 광양시에 흩어져 있고 발전사업 특성상 남자 직원이 많아 연애와 결혼에 애를 먹고 있었다. 회사는 직원들의 요청대로 결혼정보업체와 계약하고 연애강의를 개설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직원 20명과 인천지역 간호사들의 단체 미팅을 주선해 다섯 커플이 열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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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사업장을 둔 기업들이 우수한 인력이 이탈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직원들의 ‘연애사업’까지 돕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직원들이 연고가 전혀 없는 지방에서 근무하느라 결혼하지 못해 서울 근무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하거나 업무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직원 복지 차원에서 기획한 미팅 파티를 지난해에만 약 50회 진행했다”며 “직원들의 연애와 결혼이 이직률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예산을 들여 회사 차원에서 가입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한 클럽에서는 20, 30대 미혼남녀 140명이 참석해 단체 미팅을 했다. ‘청춘 빛가람 데이’라고 이름 붙은 이날 행사는 전남 나주시 혁신도시로 이전하는 공공기관 미혼 남녀들이 참석한 초대형 미팅이었다. 전력거래소 본사이전추진팀은 본사의 지방 이전으로 미혼 직원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것을 알고 아이디어를 냈다. 전력거래소뿐 아니라 국립전파연구원, 농촌경제연구원, 사학연금관리공단 등 나주시로 이전하는 11개 공공기관의 직원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며 ‘짝’을 찾았다.
○ 데이트 비용에 사내커플도 지원
기업들은 주로 지역에 기반을 둔 여성들과 맞선을 주선해 커플 성사율을 높이고 있다. 전남 여수시에 정유공장을 두고 있는 GS칼텍스는 2009년 4월부터 직원에게 커플로 성사될 때까지 소개팅을 주선하고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처음에는 전국 각지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다 최근에는 주로 광주와 전남지역 여성들을 남자 직원들에게 소개해주면서 성사율이 더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회사의 주선으로 만난 커플 두 쌍이 결혼에 골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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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커플을 장려하는 경우도 있다. 경기 평택시와 충남 태안군 등에 사업장을 둔 한국서부발전은 사내 시설에서 결혼하는 직원들에게 웨딩드레스 대여 비용, 메이크업 비용 등을 지원하고 결혼식장에서 공항으로 가는 웨딩카도 제공한다. 직원들이 희망하면 경영진이 주례로 나서기도 한다. 지난해에만 이 같은 혜택을 받은 사내커플이 14쌍에 이른다. 경기 이천시에 본사를 둔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사내 미혼 남녀 직원들의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다.
이서현·장강명·김창덕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