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보호구역 묶여 51년간 증개축 규제
보존과 방치 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인 서울 종로구 종묘의 담장 밖 골목길에는 허름한 주택과 상점들이 뒤엉켜 있어 도심의 슬럼가를 연상케 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한 건물의 외벽에는 구청의 재난위험시설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기도 했다. 액화석유가스(LPG) 통들이 담 주변에 방치돼 있어 화재 위험도 있어 보였다. 종로구 원서동 창덕궁 서측 담장 근처에는 오래된 주택들이 담장에 맞대고 있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세계문화유산인 종묘와 창덕궁 주변 지역이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후 50여 년간 문화재보존구역으로 묶여 개발되지 못하면서 도심 슬럼가로 전락하고 있다. 이 지역에 들어왔다가 쓰레기 냄새와 허름한 건물들 때문에 미간을 찌푸리고 돌아서는 관광객들도 있을 정도다.
광고 로드중
주민들은 “로마 사람들은 조상 덕에 먹고사는데 우리는 문화재 때문에 굶어죽는다”고 하소연했다. 주민 유길상 씨(66)는 “청와대 앞이고 서울 한복판인데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상태로 방치되는 게 말이 되느냐”며 “고도제한 때문에 건물을 올리더라도 수익이 나지 않으니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종묘와 창덕궁 주변은 도심이기 때문에 평당 3000만∼3500만 원 정도 된다”며 “하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거래가 이뤄지지 않는다. 바로 앞의 인사동이나 종로 일대는 평당 2억 원이 넘는다”고 설명했다.
종로뿐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인 경기 수원화성 내 주택들이나 경북 경주 역사유적지구, 안동 하회마을 등도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
광고 로드중
문화재를 관리하는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주변 정비의 필요성은 공감하면서도 예산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문화재 주변 정비의 주체는 해당 지역 지자체”라며 “토지 매입 등에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 만큼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pjw@donga.com
이정규 인턴기자 동국대 사회학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