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설 앞두고 쪽방촌 합동차례 마련 전쟁고아 70대 “이렇게라도 찾아봬 다행”
최기남 씨(72)는 차례상 앞에서 털모자를 벗더니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연신 매만졌다. ‘60여 년 만의 재회’가 가슴 설레는 듯 몇 번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러고는 절을 하려 몸을 굽혔지만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40년간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며 혹사당한 다리는 관절염에 걸려 제대로 굽혀지지 않았다. 힘겹게 다리를 떨며 두 번 절을 했다. 최 씨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폭격으로 잃은 부모님에게 62년 만에 올리는 절이었다. 부모님을 향해 지낸 첫 제사였다.
설(10일)을 이틀 앞둔 8일 오전. 3.3m²(1평) 남짓한 쪽방 900여 개가 몰려 있는 서울 용산구 동자동의 쪽방 상담소(푸른나눔터) 지하에서는 대부분이 노인인 쪽방촌 주민들이 모여 공동 차례를 지냈다. 일부 단체가 쪽방촌 일대 공원에서 떡국을 무료로 배급하면서 그 주변에 차례상을 차린 적은 있지만 실내에 제대로 된 상을 차리고 차례를 지낸 건 서울시가 주관한 이번 행사가 처음이다.
최 씨는 “남들이 다 지내는 차례지만 내게는 사치였다”라고 했다. 그는 9세 때 부모를 잃고 전쟁고아가 됐다. 그 후 60여 년을 넝마주이, 구두미화원 등을 하며 어렵게 생활했다. 차례를 지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고생 끝에 그가 얻은 건 당뇨와 관절염이었다. 병을 치료하느라 그나마 모은 돈까지 모두 썼다. 결국 2005년 전세방에서 월세 15만 원짜리 쪽방으로 거처를 옮겨야 했다. 그는 “사는 게 힘에 부쳐 부모 한번 못 기리고 살았다”며 “부모님 얼굴을 완전히 잊어버리기 전에 이렇게라도 절을 올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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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쪽방촌 주민 70여 명이 차례로 행사장을 찾았다. 대부분 혈혈단신인 그들은 자신의 방 크기만 한 차례상 앞에서 먼저 간 부모와 가족을 기렸다. 비록 작은 행사였지만 그들에게는 가슴 따뜻한 차례상이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이지윤 인턴기자 서강대 중국문화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