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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황창규 가로막은 서울대생들 세상을 넓게 보라

입력 | 2013-01-23 03:00:00


서울대가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황창규 지식경제부 지식경제연구개발 전략기획단장의 사회학과 초빙교수 임용 계획을 백지화했다. 서울대가 사회과학대 과·반 학생회장연석회의와 산업재해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학생들의 모임(산소통) 등의 반대에 밀려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들은 황 단장을 ‘산재(産災) 경영’의 책임자로 지목하고 “반(反)노동 반사회적 경영의식이 서울대 교육기조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임용 반대 운동을 벌여왔다.

대학생들이 기업인이나 정부 인사의 강연과 학위 수여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은 종종 있던 일이다.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작년 10월 모교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에게 특강을 할 예정이었으나 진보신당 고려대 청년학생위원회 등 10여 명이 시위를 벌이자 취소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도 2005년 고려대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소수 학생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삼성”이라며 벌인 시위로 곤욕을 치렀다. 세상을 한쪽에 치우친 논리로 바라보는 일부 학생들이 다수 학생들의 권리를 유린한 사례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들이 21일 홈페이지에 밝혔듯이 학생들이 황 단장의 초빙을 ‘노동을 버리고 자본의 편에 서는 것’으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으로 사망한 근로자의 산재 인정 문제를 놓고 유족과 근로복지공단 간에 소송이 진행 중이다. 학생들은 황 단장이 암과 백혈병 등 ‘살인경영의 책임자’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 권위 있는 기관이나 사법부가 인정하지 않은 일방적 공격이다. 반도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황 단장은 과학기술 변화가 일으킨 현대 사회의 변화를 현장에서 체험한 산증인이다. 그의 강의가 싫으면 수강신청을 하지 않으면 된다. 왜 다른 학생들이 황 단장으로부터 정보기술(IT)과 사회학의 융합을 배울 기회를 방해하는가.

대학생들이 마치 구한말 위정척사(衛正斥邪) 운동을 벌이듯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지 않는 것은 아예 배울 필요가 없다고 배척하는 태도로는 21세기를 개척할 수 없다. 젊은 날 더 폭넓게 사고하고 수용해야 할 학생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시야를 넓힐 학문적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은 안타깝다. 황 단장을 막을 수는 있어도 미래를 막을 수는 없다.

사회학과 교수진은 “학생들의 이번 행동에 교육자로서의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면서도 “이 의견의 표명으로 이번 사태가 종결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종결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토론과 교육으로 이어져야 한다. 미래의 지도자들을 길러내야 할 서울대에서 소수의 과격한 학생들 때문에 합리적 목소리와 강의가 가로막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