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오늘과 내일/송상근]저도 크면 아빠처럼…

입력 | 2013-01-11 03:00:00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지난 연말을 미국에서 보낼 때 대형버스가 언덕 아래로 미끄러진 모습이 CNN에 나왔다. 미국에서 흔치 않은 큰 사고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귀국한 뒤 지난 신문을 들추다가 한국인이 관련된 사고임을 비로소 알았다.

기사를 읽다가 3년 전 인천대교 북단에서 일어난 교통사고가 떠올랐다. 당시 13명이 숨지고 11명이 다쳤다. 기자의 기억은 18년 전으로 이어졌다. 교통사고로 하루 28명 정도가 목숨을 잃던 시절이었다. 성수대교 붕괴(사망 32명)와 비슷한 인명피해가 매일 생기는 셈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사고율이었다.

‘불안-불편-불만’ 교통 3不 넘어야

동아일보는 이런 배경에서 1996년 교통안전 캠페인을 시작했다. 전면 1개면 분량의 기획기사를 매주 게재했다. 보행자를 지키자, 어린이를 보호하자, 장애인을 배려하자, 노인을 생각하자는 내용이었다. 건설교통부 경찰청 대한손해보험협회가 개선 방안을 함께 찾았다. 캠페인은 2002년까지 계속했다. 효과가 서서히 나타났다. 2011년에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5229명이다. 동아일보가 캠페인을 시작했을 때의 절반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피해가 많이 줄었지만 선진국과 차이가 크다. 2009년 기준으로 자동차 1만 대당 사망자(2.8명)가 미국(1.5명) 영국(0.7명) 일본(0.7명)의 2∼4배 수준이다. OECD 32개국 중에서 30위.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

사망자만큼 교통사고 자체가 크게 줄지 않은 사실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2001년과 2011년을 비교하면 발생건수는 26만579건에서 22만1711건으로, 부상자는 38만6539명에서 34만1391명으로 감소하는 데 그쳤다. 매일 607건이 일어나 935명이 다친다.

원인은 ‘우리 마음’에 있다. 과속 신호위반 음주운전을 범죄로 여기지 않는다. 교차로에서 꼬리 물고 진입하기, 다른 차로에 불쑥 끼어들기, 횡단보도의 정지선 넘기 역시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의식과 습관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운전이 무서운 대한민국, 시동 꺼! 반칙운전’이라는 연중기획을 시작한 이유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국가에서 기초질서를 논하니 한심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만’인 현실이 계속된다. 교통 3불(不)을 넘지 않고는 진정한 선진국이라 하기 힘들다.

뉴질랜드에 MADD라는 시민단체가 있다. ‘음주운전에 반대하는 어머니의 모임(Mothers Against Drunken Drivers)’의 첫 글자를 따서 이름을 만들었다. 술 취한 운전자가 모는 자동차에 가족을 잃거나 다친 사람들이 회원이다.

자녀에게 부끄럽지 않은 운전을

경찰이 음주운전 단속을 소홀히 하고 법원이 관대한 판결을 내리면 MADD가 바빠진다. 항의편지를 보내고 집회를 연다. 정당에 대해서도 규제를 강화하라고 계속 압력을 가한다. 그래서 “MADD가 정말 미쳤다(MADD is really mad)”는 말이 나왔다. MADD와 mad의 발음이 같은 점에 착안해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발함을 보여준다. 2013년 한국에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

도로교통공단은 홍보물을 해마다 공모한다. 최종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적이 있는데 작품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저도 크면 아빠처럼 운전할래요!’ 16자의 구호, 예를 들어 ‘너와 나의 교통질서, 선진한국 앞당긴다’ 식의 표현이 대부분인 응모작 중에서 호소력이 가장 강했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입을 모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교통 3불의 현실을 바꾸고 싶다면 새해 다짐에 하나를 추가해야겠다. 승용차 뒷좌석의 아들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운전습관을 갖자고. 아이들이 커서도 아빠처럼 운전하길 바라도록.

송상근 교육복지부장 song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