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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 Up]엔高로 먹고살던 환전상들 “원高로 죽을 맛”

입력 | 2012-12-26 03:00:00

‘환율 전망의 척도’ 서울 명동 환전소 가보니




썰렁한 환전 거리 크리스마스인 25일 서울 중구 명동 번화가의 한 환전소 앞 한산한 풍경. 입간판과 광고판에는 일본 엔, 중국 위안, 미국 달러, 유로, 홍콩 달러를 취급한다는 내용이 소개돼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00엔당 1260원, 미화 1달러당 1060원, 1위안당 172원.’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 오후 3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서울 중구 명동. 한 환전소의 시세판에 소개된 환율은 며칠째 내림세였다.

거리에는 여전히 일본어나 중국어로 호객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환전소 앞은 한산했다. 환전소 앞에 줄지어 서 있던 관광객이나 거리의 무허가 환전상도 자취를 감췄다. 환전소를 운영하는 한 40대 여성은 “환전을 해줘도 외화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원화 가치 상승) 수익이 예전 같지 않다”며 “외화가 생기면 곧바로 은행에서 원화로 바꾼다”고 말했다.

○ 일본인 관광객 감소로 손님 크게 줄어

계산기를 두드리던 환전상 신모 씨(55)는 “2009년 환전소를 시작한 뒤 요즘처럼 장사가 안 되는 때가 없었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난해 원-엔 환율(매매기준율 기준)이 1575.99원에서 고점을 찍은 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다가 24일 지난해 4월 이후 최저치인 1271원대로 추락한 것이 직격탄이 됐다.

여기에 올해 8월 독도를 놓고 한일 간 외교 갈등이 벌어지면서 한국을 찾는 일본인 관광객도 큰 폭으로 줄었다. 신 씨는 “독도사태 이후 올해 여름 하루 600∼700명이던 손님이 이제는 100명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일본인 관광객은 8월 34만6950명에서 10월 26만9732명으로 크게 줄었다. 지난해 10월(34만172명)과 비교하면 7만여 명이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엔화뿐만 아니라 위안화의 환전 수요가 줄어든 것도 악재가 됐다. 중국인 관광객은 10월 27만9440명으로 전년 동월(21만4681명)보다 6만5000명가량 늘었지만 환전 수요가 많지 않다고 환전상들은 귀띔했다.

이런 이유들로 환전상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국내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곳인 명동의 상가 임차료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건물 1층의 계단 옆 3.3m² 안팎의 공간에서 환전소를 하는 신 씨는 “한 달 월세만 350만 원이다”며 “요즘 같아서는 임차료도 감당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 외국 돈 오래 갖고 있을수록 손해

금융가에서는 환율 움직임의 나침반인 환전상들의 이 같은 움직임이 당분간 원화 강세가 지속될 것임을 시사한다고 해석한다.

일반적으로 환전상들은 외국인을 상대로 원화를 비싸게 판 뒤 외국 돈을 다시 은행에 팔아 차익을 남긴다. 그런데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외국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 유리하기 때문에 원화 가치 하락기에는 환전상들이 외국 돈을 보유할 뿐 은행에서 원화로 바꾸지를 않는다.

환전상만큼은 아니지만 환율 변동에 민감한 명동 일대 상점 주인들도 원화 가치가 오르자 엔화나 위안화로 결제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전문가들도 앞으로 당분간은 원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정부가 수출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추진해 온 고환율 정책을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여기에 일본의 엔화 가치 하락 움직임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외환 전문가인 조재성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로 안전자산인 엔화에 대한 수요가 커졌지만 미국과 유럽 경기가 회복세에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고 있다”며 “당분간 엔화 약세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