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통령 실장
朴당선인 성탄절 ‘사랑의 도시락’ 봉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가운데)이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관악구 난향동 ‘난곡 사랑의 밥집’에서 자원봉사자 및 새누리당 당직자들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들에게 줄 도시락을 만들고 있다. 19일 대선 승리 후 국민들을 접하는 첫 공식 대외 일정인 이 행사에서 박 당선인은 “골고루 온기가 퍼지도록 하는 게 최고 목표”라고 말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당시 박 전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로 이런 상황을 직접 목격했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으로서는 대통령(비서)실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뼛속 깊이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통령실장이 대통령의 신체적 안위를 좌우할 시대는 아니지만, 정권의 안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만은 변함이 없다.
① 대통령 대신 욕먹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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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김영삼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공직자 재산공개를 실시해 재산이 많은 공직자와 정치인을 강제로 물러나게 했다. ‘토사구팽’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여권 내부의 반발이 심했다. 이때 당사자를 만나 달래며 사퇴시킨 사람은 당시 박관용 비서실장이었다.
반면 실장이 자기 이미지 관리를 위해 책임과 악역을 피하려 든다면 결국 대통령에게 그 부담이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 당시 청와대 대변인의 ‘확전 자제’ 발언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첫 메시지가 ‘확전 자제’로 언론에 알려지는 바람에 이 대통령은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비쳤다. 그런데 당시 대변인 등 관계자의 책임을 즉각 묻지 않아 국민들은 대통령이 실제로 그런 얘기를 한 것으로 믿게 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을 임기 말까지 괴롭히고 있는 ‘내곡동 사저 문제’도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경호처장과 총무기획관을 설득해 책임지고 퇴진시켰으면 사태를 조기에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靑 통솔 - 내각 조율 필수… 당근 - 채찍 병행 ‘군기반장’ 돼야 ▼
청와대에서 오래 근무했던 새누리당의 한 현역 의원은 “실장은 대통령에게도 욕먹을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듣기 싫어하는 골치 아픈 얘기도 과감히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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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근혜 청와대의 초대 실장은 반드시 정치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 성향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정치력과 정무 감각을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모두 첫 실장으로 정치인 출신을 임명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지리학자 출신의 류우익 실장을 기용했다. ‘대통령비서실장론’을 쓴 함성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류 실장은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실세였지만 정치를 잘 몰라 야당과의 관계뿐 아니라 정부 여당과도 문제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연세대 총장 출신으로 노무현 대통령비서실장을 맡았던 김우식 전 부총리는 “정치를 잘 모른다고 고사했더니 (노 대통령이) ‘그러면 정치는 하지 말고 인사나 조직관리만 잘해달라’고 부탁했지만 막상 청와대에 들어와 보니 정치 아닌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③ 대통령에게 신속한 ‘1보’를 제시하는 위기관리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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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시 직무가 정지된 대통령의 공백을 고건 국무총리가 성공적으로 대행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총리의 비서실장 격인 당시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의 역할이 컸다. 한 실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고 총리의 첫날 일정부터 짜서 즉각 보고했다. 고 총리는 첫날부터 경제와 안보를 안정적으로 챙기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일 수 있었고 헌정 사상 초유의 두 달 동안의 대통령 공백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갈 때 실장은 예외적인 경우를 빼고는 청와대를 지키는 것이 관행이다.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한 것으로 실장에게는 위기관리능력이 필수로 꼽힌다.
④ 청와대와 내각의 ‘군기반장’
노태우 대통령 시절 대통령수석을 지낸 한 인사는 “청와대 조직을 통솔하는 것은 정말 만만치 않다”고 회상했다. 대통령을 만든 캠프 실무자들, 정치 경험이 풍부한 당료 출신, 노련한 관료들이 다 모인 곳이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실장은 웬만한 조직 장악력이 없으면 버티기 힘든 자리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민정당 출신의 김중권 비서실장을 깜짝 기용했다. 상대 진영에서 비서실장을 데려온 것이다. 오랫동안 김 대통령을 보좌했던 동교동계의 반발이 커 청와대 내에서는 박지원 공보수석과 김 실장 사이에 미묘한 긴장 관계까지 형성됐다. 그러나 3선 의원과 대통령정무수석을 지낸 김 실장은 특유의 정치력으로 청와대를 완전히 장악했다.
직원들에게 ‘채찍’만 휘두른다고 유능한 실장은 아니다. 정윤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정치학)는 “실장은 기본적으로 조직의 화합을 이끌어 가야 하기 때문에 독선형은 안 된다”고 말했다.
⑤ 여성 대통령에게 심리적 안정 줄 수 있는 소통 능력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기 때문에 실장의 자질도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김중권 전 실장은 “대통령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대통령 부인과 실장인데, 여성이고 독신 대통령이어서 실장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며 “대통령의 파트너가 될 정도로 심리적 안정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일과 시간 후에는 ‘구중궁궐’이나 마찬가지인 청와대에 고립된다. 어지간히 긴급한 용무가 아니면 대통령에게는 전화도 오지 않는다. 이때 실장이 대통령과 저녁식사라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거나 외부인을 만나 소통하면서 민심을 접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 소장은 “박 당선인은 정치를 잘 알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처럼 친화력을 발휘하거나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조용히 국정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며 “실장은 국회 정부 야당을 두루 알고 성격도 밝고 활동적이면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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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윤완준 기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