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영 경제부 기자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돈이 아니라 은행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 내년부터 프로 2부 리그로 전환되는 내셔널리그에서 상위 2위 안에 들면 이듬해에는 프로 1부로 올라가야 한다. 또 프로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프로 1부에서 뛰려면 해당 축구단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FC바르셀로나와 같은 프로구단, 즉 법인이 돼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은행 업무개선부 소속인 국민은행 축구단에 이런 변신은 불가능하다. 은행법에서 은행은 은행업 이외의 다른 영리 활동을 하는 법인을 만들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은행법 때문에 ‘멘붕’인 곳이 또 있다. 자율형 사립고인 하나고와 ‘특수 관계’에 있는 하나금융지주다. 하나금융지주 계열사인 하나은행은 하나고에 지금까지 약 580억 원을 지원했다. 그런데 은행법이 개정된 2009년 10월 이후 지원된 330억 원은 은행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금융위원회의 유권해석이다. 개정된 은행법 35조 2의 8항은 은행이 대주주나 특수 관계인에게 무상 지원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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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규제 산업인 은행업은 관련 법 개정 방향에 큰 영향을 받는다. 스위스은행이 세계 부자들의 비밀금고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스위스 연방은행법과 관련이 있다. 스위스 정부는 나치 독일의 탄압을 받던 유대인들이 자산을 처분한 돈을 스위스 은행에 예치하기 시작하자 1934년 해당 법을 개정해 은행이 고객 정보를 공개하면 벌금을 물리는 ‘금융비밀주의’를 도입했다. 나치의 박해에 시달리는 유대인을 돕는다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속내는 유럽의 유대인 자금을 끌어모아 실속을 차리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은행법 1조는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고 자금 중개 기능의 효율성을 높이며 예금자를 보호하고 신용질서를 유지함으로써 금융시장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개정 은행법에 은행 대주주에 대한 무상 양도 금지 조항을 넣은 것도 주머닛돈과 쌈짓돈을 구분해 ‘은행의 건전한 운영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최근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 대주주들의 전횡을 봤을 때 적절한 안전장치로 보인다.
하지만 법 개정 당시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조항은 은행들의 사회공헌활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멀쩡한 축구단이 해체되고 갓 설립된 사립학교에 대한 지원금이 끊기면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한다’라는 은행법의 존재 이유와도 배치된다. 원래 개정 취지는 살리면서 은행의 공익 활동이 지속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만들어 불필요한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