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해맞이 안전하게 하려면
산과 강의 경치를 함께 볼 수 있는 아차산은 서울의 유명한 ‘해돋이 명소’다. 17일 오전 서울 광진구 아차산에 오른 손용식 강사(가운데)가 신창수(25), 김수현 씨(28·여)에게 겨울철 해맞이 산행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뜬금없이 출근길 이야기를 꺼낸 건 계사년(癸巳年) 첫 일출을 보러 산에 오를 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에서 일출을 맞으려면 새벽산행을 감행해야 하는데, 뚝 떨어진 기온에 산비탈이 얼어붙어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해맞이 등산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이유다.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해맞이 새벽산행에 대한 노하우를 알아보기 위해 17일 서울에서 가장 일출을 보기 좋다는 서울 광진구 아차산을 미리 올라가 봤다. 독자 여러분을 위해 손용식 코오롱등산학교 강사를 초대했다. 그는 고어코리아의 아웃도어 전문가그룹인 고어텍스 마스터팀에서도 활동하는 등산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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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산행이 위험하진 않나요? 사람들한테 마구 추천해도 괜찮을까요?”
“생각만큼 위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추운 날씨에 강한 바람까지 불 테니 꼼꼼히 준비해야죠. 우리가 평소에 의식주(衣食住)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등산도 똑같아요. 잘 입고, 잘 먹으면 되지요. 단, 산에는 집(住)이 없으니 여기서는 ‘나아갈 주(走)’라고 생각하자고요.”
衣(의) 겹쳐 입어라
해맞이 복장 장비 갖추기. ①상의: 안쪽부터 등산용 내의, 보온용 옷, 겉옷 순으로 입는다. 안쪽에 입는 두 벌은 보온효과를 내주고, 겉옷은 비바람 같은 악조건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한다. ②스페츠: 눈이 쌓였을 때 효과적인 장비, 무릎 아래부터 등산화까지 빈틈없이 가려주기 때문에 신발과 바지 틈으로 눈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준다. ③아이젠: 빙벽을 오를 계획이 없더라도 챙겨야 한다. 눈 속에 빙판같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맨바닥에서 차고 다니면 오히려 발만 피곤해질 수 있다. ④모자: 두툼한 모자와 가벼운 재질의 모자를 구분해 챙긴다. 보온용 모자만 눌러쓰고 다니다 보면 머리가 땀에 푹 젖어 저체온증이 생길 수도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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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을 끼거나 신발을 신을 때도 비슷하다. 안쪽에는 보온용 제품을, 그 위로는 방수 투습 기능이 있는 것을 착용한다. 특히 장갑보다는 신발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겨울철에는 눈을 밟고 다닐 수 있으므로 발에 땀이 고이지 않으면서 바깥의 눈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신발을 신거나 스패츠(발목에 착용하는 일종의 덮개) 등을 덧대야 한다.
레이어링 시스템의 목적은 몸을 마른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다. 땀으로 몸이 젖으면 마른 상태보다 열손실이 240배가량 커지기 때문에 저체온증이 찾아올 위험이 크다.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만약 등산길에 땀을 많이 흘렸다면 바로 내의를 갈아입어야 한다.
아차산 정상에 도착할 즈음 손 씨가 겉옷과 보온용 셔츠의 지퍼를 반쯤 내렸다. “땀이 나기 전에 미리 겉옷과 보온용 옷의 지퍼를 내려줘야 해요. 땀이 나면 이미 늦은 겁니다.” 5분쯤 지나자 이번에는 밖으로 꺼내 입었던 보온내의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었다. “몸이 살짝 식었잖아요. 너무 추워지면 안 되니까 살짝 보온효과를 주는 거죠.” 그는 “저체온증은 우리가 눈치 못 채는 사이 서서히 찾아오기 때문에 미리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食(식) 배고프기 전에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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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체온증을 막으려면 잘 입는 것만큼 잘 먹는 것도 중요하다. 손 씨는 “부실한 식사는 저체온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저체온증은 바람이나 습기뿐 아니라 영양부족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특히 새벽산행 때는 식사시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빈속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매우 곤란하다. 입산 전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 한다.
산행 음식은 비상식과 행동식 두 가지로 분류된다. 비상식은 소모된 에너지를 빨리 충전하거나 저체온증 증상이 있을 때 먹기 위해 배낭에 넣어두는 것으로, 유통기한이 길고 열량이 높은 제품이 좋다. 손 씨는 “베테랑 등산객이라면 배낭 속에 포장지가 다 해진 초콜릿이나 양갱 하나쯤은 들어있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행동식은 몸을 움직일 때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먹는다.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고루 갖춘 것이 좋다. 시중에서 에너지바나 시리얼바로 불리는 제품이나 소시지 등이 대표적이다.
손 씨가 꿀물을 두 잔째 건넸다. 기자가 더 마시고 싶지 않다며 머뭇거리자 그가 덧붙였다. “산행 중에는 당연히 식욕이 없어져요.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정기적으로 음식을 먹어야 해요. 산행 중 배가 고파지면 에너지가 다 떨어졌다는 얘기니까 이미 늦은 거죠.”
走(주) 아픈 사람처럼 걸어라
겨울철 해맞이 산행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등산 전에는 적절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눈이 다 녹지 않은 산을 오를 계획이라면 등산로는 북사면이 낫다. 햇볕이 드는 다른 쪽 길은 눈이 어설프게 녹았다 다시 얼어 생긴 빙판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등산시간도 평소의 2, 3배로 늘려 계산해야 한다. 시간을 촉박하게 잡았다가 일출시간에 맞추려 무리하게 산을 오르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등산은 힘들게 하는 것’이라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 그는 올라가는 내내 페이스 조절을 강조했다. 숨이 거칠어지고 몸에 땀이 나는 건 오버페이스의 증거다. 경사가 심할 때는 보폭을 발 크기의 절반으로 좁혀 천천히 걷고, 평지에서는 허벅지를 가볍게 풀어주면서 걷는 등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날씨가 추우니 몸을 데우려고 무리해서 속도를 내다가는 하산길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손 씨는 “올라갈 때 체력의 40%, 내려올 때 30%를 쓴다고 생각하라”고 말했다. 나머지 30%는? ‘예비용 체력’이란다.
“등산하느라 힘든 것보다 올바르게 걷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하산이 끝날 무렵 기자가 말했다.
“그렇죠. 3주는 교육을 해야 제대로 걷기 시작해요. 하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으니 하나만 알려드릴게요. ‘나는 지금 다리를 다쳐서 아픈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발걸음이 최대한 조심스러워지지 않겠어요?”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