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수입 5000t, 왜 유통업체 창고에 절반이상 쌓여있을까
농수산물유통공사가 수입한 말레이시아산 수입설탕(왼쪽 큰 포대)은 일반 가정에서 소비하기 힘든 대용량 포장 탓에 판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소비자들, 수입설탕 외면
우선 유통업계의 현실은 aT의 설명과 차이가 컸다. 대형마트 A사는 7월 초 aT에서 72t의 설탕을 들여와 현재 매장에서 판매 중이다. 5개월간 팔린 설탕은 전체 물량의 절반이 채 안 되는 29t가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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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설탕을 판매 중인 대형 할인점 B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B사는 7월 aT에서 25kg 설탕 600포대(15t)를 구입했지만 그동안 200여 포대밖에 팔지 못했다. 5일 찾아간 B사 매장에서도 간간이 설탕을 찾는 고객들은 5kg 소포장 국산제품에만 관심을 가질 뿐 ‘물가안정 설탕’이라는 이름이 판매대에 붙은 aT의 수입설탕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 식품업계, “수입설탕, 부담스럽다”
aT는 설탕 수입의 명분으로 설탕을 재료로 사용하는 식품 물가 안정을 내세웠다. 4700t의 물량을 떠안은 식품 외식업계도 aT의 설탕 수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aT에서 수입설탕을 구입했던 업체들은 “가격 자체가 큰 매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aT가 이들 업체에 판매한 설탕 가격은 100g당 920원 선으로 국내 제당업체의 설탕 가격 1050원에 비해 12.4%가량 싸다. 그러나 aT가 설탕 물류비용을 구매자가 직접 부담하도록 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가격차이는 10%가 채 안 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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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책 실패 책임, 민간업체가 부담
설탕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초기에 가격관리를 하겠다고 공언한 52개 ‘MB물가’ 품목에 포함된 제품이다. 이 대통령은 꾸준히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대한제당의 설탕시장 과점을 비판해 왔으며 2월 국무회의에서 “설탕은 독점 아니냐. (aT의) 직수입은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대통령의 뜻에 따라 aT가 설탕을 수입했지만 민간 유통업계는 재고 부담을 안게 됐고 식품 가격 안정에도 큰 도움이 안 된 셈이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식품은 3∼6개월 내에 팔 수 있는 양만 구입하는 게 정상”이라며 “안 팔릴 걸 알고도 수입설탕을 산 것은 정부 눈치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aT의 설탕 직수입 이전인 2년 전 유통업체 C사는 국내 설탕가격보다 30%가량 싼 남미산 설탕 수입을 검토했다. 하지만 제조사가 요구하는 최소 구매량이 월 5만 t 수준으로 너무 큰 데다 이를 현지는 물론 국내에서도 가정용으로 소포장할 곳을 찾지 못해 포기했다. 결국 aT는 C사가 실패가 예상돼 포기한 사업을 뒤늦게 한 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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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당업계는 우리나라의 설탕 수입 관세율 30%도 외국과 비교할 때 낮은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