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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피아프 노래한 파트리시아 카스 그녀의 마법에 흐느낀 객석

입력 | 2012-12-04 03:00:00

2012년 12월 3일 월요일 눈/비. 참새, 부활하다. 트랙 #35 Patricia Kaas ‘Mon Dieu’(2012년)




1998년 겨울, 서부 전선엔 이상이 없었다. 이등병이던 난 훈련을 위해 부대 주둔지인 경기 포천에서 철원까지 행군했다. 이름 모를 야산에 우리의 진지가 구축돼 있었다. 전쟁이 나면 그 안에 들어가 북쪽에서 내려오는 적을 기다리는 것으로 ‘작전’이 짜여 있었다. 기관총 사수인 선임병 B와 함께 들어간 2m 너비의 참호가 ‘무덤’처럼 느껴졌다.

선임병의 ‘콘서트’가 시작된 건 오후 2시쯤이었다. 짐을 풀고 총을 거치해둔 B가 물었다. “야.” “이병 임희윤!” “사회 있을 때 음악 좋아했다면서?” “네, 그렇습니다!” “그럼, 그 노래 아냐? 사랑의 찬가라고….” “잘… 모르겠습니다!” B가 밑도 끝도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사위는 적막했다. 야산을 메운 전나무들만이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땅이 꺼져버린다 해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선임병이 호랑이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느껴질 때 무덤 같은 그곳에서 내 차가워진 두 뺨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파트리시아 카스는 복서와 댄서, 흰 새와 검은 새로 변신하며 절규하고 절창했다. 뮤직컴퍼스 제공

2일 오후 10시 반. 난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층 객석에 앉아 있었다. 프랑스 가수 파트리시아 카스의 무대는 마법 같았다. 막이 열리자 카스는 무대 위에 무릎을 꿇고 노래를 시작했다. ‘신이여, 신이여, 나의 신이여…. 그를 내게 남겨 주세요. 조금만 더. 내 사랑하는 사람을. 하루, 이틀, 일주일이라도.’(‘몽 디외’)

짧은 금발에 검은 드레스 아래로 맨발을 드러낸 카스는 몽환적인 영상, 무대 위의 댄서와 함께 한 편의 ‘고난과 부활’ 이야기로 관객을 이끌었다. ‘파담 파담’ ‘장밋빛 인생’ 같은 명곡들은 피아프의 신경질적인 고음 대신 카스의 중성적이고 강렬한 중저음으로 새로 태어났다.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두 곡. 피아프의 연인이었지만 비행기 추락 사고로 숨진 마르셀 세르당의 비극을 형상화하듯 카스는 권투 글러브를 낀 채 ‘라 벨 이스투아 다무르(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불렀다. 맨발로 빙글빙글 돌다 무너지듯 쓰러지면서 노래를 이어갔다.

그 곡이 끝나자 스태프는 검은 깃털로 뒤덮인 커다란 외투를 카스에게 입혔다. ‘참새’(‘피아프’의 프랑스어 원뜻)는 거대한 까마귀로 부활했고, 카스는 ‘사랑의 찬가’를 시작했다. “푸른 하늘이 무너져 내려도/그리고 땅이 꺼져버려도/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내겐 조금도 중요하지 않아요. …무한하고 푸른 창공에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거예요.”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