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무대로 근대 세계사 해석해온 주경철 교수, 콜럼버스의 마음속을 항해하다정신세계 해독한 저서 내년초 출간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에게 바다란 ‘오트로 문도(otro mundo)’, 즉 또 다른 세계다. 바다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이 역사학자의 글은 그래서 넓고 새롭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콜럼버스의 대항해는 그렇게 죽음을 무릅쓴 모험이었다. 막대한 돈을 벌거나 신분 상승을 꾀하겠다는 생각만으로 죽음을 감행할 수는 없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거친 파도를 앞에 두고 산타마리아호의 닻을 올린 걸까.
‘대항해시대’(2008년) ‘문명과 바다’(2009년) 등에서 바다를 무대로 근대 세계사를 해석해 온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52)가 이번에는 콜럼버스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해외로 팽창하는 유럽의 최선두에 서 있던 콜럼버스의 마음을 탐구함으로써 당시 유럽의 정신 구조를 해독해 보는 작업이다. 최근 집필을 마친 신간 ‘신비주의자 콜럼버스’(가제)는 서울대 중세르네상스연구소 총서의 첫 권으로 내년 초 출간될 예정이다.
콜럼버스에 대해서는 현대의 벤처투자자처럼 ‘부를 찾아 모험한 세속적 인간’이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그런데 최근 해외 학계에서는 종교적이면서 신비주의적인 콜럼버스의 새로운 면모가 연구되고 있다. 주 교수는 콜럼버스가 작성한 ‘예언서’와 항해일지 등을 바탕으로 그가 종말론에 빠져 있었다고 분석했다. 콜럼버스는 세계의 운명에 대한 종말론적 대서사시를 지어 국왕에게 바치려 했으며, ‘예언서’는 그러한 작업 과정에서 자료를 모으고 코멘트를 단 모음집이라는 것이다.
“15세기 스페인에는 종말론이 퍼져 있었는데, 하느님이 미천한 사람을 골라 신의 일을 맡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콜럼버스는 그게 자신이라고 믿었고요. 그는 아메리카 대륙(그는 죽을 때까지 이 땅이 아시아라고 믿었다)을 지상낙원(에덴동산)이라 생각했고, 고전 독서를 통해 인류 종말까지 150년이 남았다고 결론 내렸어요. 신대륙에서 금을 얻어 십자군을 일으킨 뒤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일, 그것이 신에게서 부여받은 역할이라고 믿은 거지요.”
그동안 콜럼버스를 보는 시각은 정체된 유럽을 벗어나 신대륙을 향해 나아간 근대적 영웅, 또는 원주민을 학살하고 약탈한 서구 제국주의의 대표자로 양분되어 있었다. 주 교수는 “과거의 인물을 정치적 요구에 따라 단편적으로 왜곡해서 볼 게 아니라 여러 층위에서 보려 했다”고 말했다.
다작을 해온 주 교수의 꿈은 언젠가 유토피아니즘(utopianism·공상적 이상주의)의 역사를 책으로 써내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경제 발전에만 급급하지, 무엇이 이상적 사회인지, 이상적 사회를 위해 국가와 사회는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없어요. 역사적으로 어떤 유토피아를 꿈꿔왔고 그 시도는 어땠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지금 역사가가 할 일이 아닐까요.”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