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농의 아들… 노동자로 사회 첫발, 부임하는 곳마다 경제발전 끌어내
장가오리 중국 신임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왼쪽)이 톈진 시 서기로 있던 2008년 8월 1일 전국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톈진에 오자 이를 넘겨받고 있다. 사진 출처 톈진정우망
○ 석유공사 시멘트 운반 노동자로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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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임한 곳마다 경제적 발전 이끌어 내
장가오리는 선전 시 서기로 재직하던 1998∼2000년 선전 시를 하이테크 산업도시이자 숲이 많은 그린도시로 만들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장쩌민(江澤民) 당시 주석은 장가오리의 ‘선전 모델’을 칭찬하고 그를 산둥 성장으로 발탁했다.
산둥 성 성장과 서기로 일한 2001∼2006년에는 산둥 성의 무역 및 하이테크 산업을 발전시킨 결과 2006년 산둥 성의 국내총생산(GDP)이 처음으로 2조 위안(약 357조 원)을 넘기면서 산둥 성이 전국 3위의 경제 대성(大省)이 됐다. 중국 지도부는 그의 경제업무 처리 능력과 특정한 사안을 큰 그림 속에서 파악한 뒤 해결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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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가오리는 장쩌민 전 국가주석을 영수로 한 상하이방(上海幇)으로 분류된다. 또 태자당(太子黨)의 영수인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과 석유 분야에서 같이 일한 인연으로 석유방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선전 시 서기로 있을 때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의 부친 시중쉰(習仲勳)을 잘 보살펴 시진핑과의 관계도 좋은 편이다.
그는 경제통으로서 역시 경제학을 전공한 장더장(張德江·66) 상무위원과 호흡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두 사람 모두 민영기업보다는 국유기업을 중시하고, 분배보다는 성장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톈진 시의 고도성장을 지나치게 투자에 의존해 이끌었다는 비판도 있다.
대학 시절 만난 동창과 결혼해 딸 1명을 두고 있으며, 리셴이(李賢義) 신이(信義)유리 회장과 사돈 간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